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던 추상적인 단어들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인식하고 추상적이라고 부르게 되는것일까?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사랑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아는것일까? 내가 ‘사랑’이라고 이름붙인 경험이, 사랑 그 자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경험에 의한 워딩이 아닐까? 감정의 단어에 이름을 붙이게 되는 것은 감정 자체에 대한 선험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선험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경험에 많은 것을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선험적인 것을 생각할수록, 우리 스스로의 존엄과, 내가 나를 믿는 것이 정말 위대한 일임을 깨달아 가는 일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이 우리의 경험 안에 내재되는지 칸트를 읽으며 나눠보기로 했다.


[우리 인간에게는 대상이 촉발되는 감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감성을 매개로 하여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며’ ,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에 반해 오성으로부터는 ‘개념’이 생겨난다. 대상이 표상될 때만 관계하는 직관을 ‘경험적’이라 일걸으며, 경험적 직관의 막연한 대상을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 61쪽


우리는 우리의 인식체계 속에서 우리가 인식을 할 때, 대상을 직관하고, 그 대상을 개념화 함으로써 우리가 인식을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우리의 인식은 직관과 오성이 동시에 작동할 때 발현된다.


[감각에 속하는 어떤 것도 가지지 않은 표상을 나는 순수라고 한다. 그러므로 순수 형식은 우리의 심성에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경험적 직관에서 오성이 사유하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선험적으로 크기나 형태등이 순수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러한 크기나 형태는 순수 직관에 속하며 선험적으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 – 62쪽

[선험적 감성론에서 우리는 경험적 직관으로부터 감각에 속하는 모든 것을 분리시켜 순수직관, 즉 현상의 형식만을 잔류하게 한다. 이 연구에 의해서 감성적 직관의 두 가지 순수형식이 선험적 인식의 원리로서 공간과 시간이 존재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이 공간과 시간을 고찰하여 보기로 하자.] – 63쪽

[공간은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대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미 공간이란 개념이 선험적으로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간 자체의 개념이 없으면 대상이 표상 될 수가 없다.] 64~65쪽

[공간은 결코 물자체의 성질(경험)을 나타낸 것이 아니며, 그저 외적 감관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조건에 의해서만 외적 직관이 가능하다. 또한 공간이라는 술어는 사물이 우리에게 현상 될 때만, 즉 감성의 대상이 되는 한에서만 사물에 적용된다.] – 67쪽

[시간 또한 경험적 개념이 아니다. 시간은 현실의 대상이 없어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된다. 시간은 내적 감관의 형식으로서 대상에 앞서 존재하며, 선험적으로 표상될 수 있다.] – 72쪽

[시간은 모든 현상 일반의 선험적인 형식적 조건이다. 칸트는 내적 감관의 원리에 의거하여 보편적으로 모든 대상은 시간 안에 있으며, 필연적으로 시간 관계 안에 존립한다 라고 이야기했다.] – 73쪽

[다만, 시간은 대상 그 자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직관하는 주관에서만 선험적 형식으로 존재한다.] – 75쪽

[따라서 시간과 공간의 형식적 개념은 종합적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는 두개의 인식원천이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모든 직관이 현상에 대한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사물의 관계도 그대로의 성질 자체가 아닌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79쪽

[감성계에서는 결국 현상 이외의 것에는 관여하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물자체를 인식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비’라는 대상을 생각해봤을 때, 빗방울과 빗방울의 둥근 모양, 낙하하는 공간까지도 경험적 대상에 해당하지만, 물자체로 인식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대상은 무(無)가 되기 때문이다] – 82쪽

[자기 자신의 의식, 즉 통일된 지각(통각統覺)은 자아의 단일한 표상이며, 내적 직관의 감관인 시간이 그것을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인간에게서 ‘나’라고 하는 단일의 인식은 주관속에 주어지는 다양한 것을 내적으로 지각하며, 이 다양이 마음에 주어지는 방식은 감성적 직관이다.] – 85쪽

[즉, 칸트는 외적 대상을 직관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마음이 자기 직관을 하는 경우 또한 모두 공간 또는 시간에서 대상이 우리의 감관을 촉발하는 대로를, 대상이 현상하는 대로를 표상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물체나 영혼을 정립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지, 물체나 영혼이 객관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은 현상에 귀속시키지 않고 그저 가상으로만 간주하는 실수 행위이다.] – 86쪽

[만일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모든 사물의 객관적 형식이 되도록 하려면, 그들은 우리의 외적 및 내적 직관방식의 주관적 형식이 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선험철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선험적 순수직관인 공간과 시간을 얻었다. 그러나 선험적 판단은 경험의 대상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을 뿐, 감관의 대상 이상일 수는 없다.] – 88쪽


시간과 공간은 분명 우리가 선험적으로 대상을 인식 할 수 있는 형식적 조건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안다고 하더라도 위의 문장들과 같이, 경험의 대상에서 구별해낼 수 있는 직관적 조건일 뿐, 판단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 조건이 아닌 주관적 조건에서 선험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형식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연구과제인 ‘신’, ‘자유’, ‘불사’의 가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칸트는 그 조건들이 객관적 형식이 되기엔 감성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선험의 논리학을 읽으며 기존의 선험적 감성을 가지고 어떻게 순수 오성을 사유하는 것이 순수 이성을 구성하는데 필요한지 이야기 해보고, 우리가 이름 붙인 추상적인 감정들이 선험적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 경험을 제외하고, 그 자체에 대해 접근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