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시작하고, 지음은 ‘순수이성비판’을 읽기 시작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무엇일까?

순수? 이성? 비판? 순수이성을 비판한다는 것인가? 순수 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단어인 ‘이성’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았다. “인간은 모두 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이성이라는 것이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경험만으로 우리는 이성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걸까?”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선험은 무엇일까?” “ “선험은 순수의 개념인가? 선험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선험과 경험의 차이는 뭐지?” 우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있던 이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성의 체계에서 경험을 제외한 순수이성이라니… 더더욱 이 책의 제목만으로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것을 “비판”한다니 우리는 이 책에서 칸트와 함께 무엇을 해나가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 대해서는 특수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성 자체의 본성에 주어진 것이므로 거부할 수 없으며, 또한 인간 이성의 능력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 답을 얻지도 못할 문제들로 괴로움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 8쪽

[이성이 사용하는 원칙을 모든 경험의 한계를 초월해 있으므로, 이성은 경험에 의한 비판을 이미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논쟁의 싸움터를 곧 형이상학이라 일컫는다] – 8쪽

[곧 이성의 정당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안전하게 보호하고, 반대로 근거없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강압적인 명령에 의하지 않고 이성의 영구불변한 법칙에 따라 명쾌하게 제거할 수 있는 법정 설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법정이 바로 ‘순수 이성 비판’이다] – 11쪽

[여기서 말하는 비판이란 이성이 ‘일체의 경험과 상관없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인식에 관한 이성 능력 일반에 대한 비판이다. 칸트는 유일하게 남아있던 비판이라는 길을 택함으로써 지금까지 이성이 경험을 떠나서 사용된 경우 스스로 모순에 빠졌던 모든 오류가 제거되었다고 자부한다.]-11쪽

[다음의 비판은 이성 자체와 순수사유 만을 문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에 대한 앎을 구하기 위해 나를 멀리 벗어날 필요가 없다. 내 안에서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2쪽

[칸트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대한 조건과 원천이 바로 순수이성에 관한 비판이며,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재판관’의 인내와 공평을 바란다고 기술 했다.] -15쪽


우리는 모두 경험론자인가? 경험만이 우리의 모든 인식 체계를 구성하며, 경험 외적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조차도 사실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과, 반드시 경험을 하지 않고도 우리는 일몰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낄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인간 이외의 존재에 경외하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경험의 외적 부분에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나누며 경험과 선험에 대한 구분과, 선험을 깨닫는 것이 왜 중요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험은 경험하지 않아도 우리가 알고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 선험도 경험을 통한 선험이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계속 우리의 대화 속에 남았고, 왜 순수이성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제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았다. 그리고 이성은 확장하는 것이 그 본성인데 확장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신? 자유? 불사? 그것을 경험한 인간은 존재할까? 경험해 본 인간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고있는가? 알고있는것이 아니라 믿음인가? 우리는 경험의 과정에서 어떻게 경험을 알아차리며 경험이 아닌 것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순수 이성을 골라 낼 수 있을까? 라는 끊임없는 많은 질문들이 맴돌았다.

우리는 경험과 선험을 인식하는 우리의 인식체계에 대해 칸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 더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