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선의가 선의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인가? 우리 모두는 당연한 선택들을 쉽게 하고 있는것인가?

눈이 머는 것은 인간에게 ‘장애’요소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 기능을 잃는 것이다. 책 속에서 눈이 먼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볼 수 있는’ 기능이 사라진 것에 대해 두려워 하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상실되는 한가지가 더 존재한다.

바로 ‘책임감’이다.

나의 잘못으로 눈이 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질병에 대해 쉽게 절망하고 좌절했으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또한 나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쉬운 선택이 되었던 것이다.

눈이 멀자, 자신이 볼수 없다는 사실과 타인 또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모든 등장인물들은 같아진다. ‘같아진다’라는 말은 ‘다를바 없다’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내가 누군지 분명하지 않다’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렇게 같아진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의 생리적 요소, 본능과 욕구만이 그들에게는 공통적 목적이 되며, 그것을 위해서 살아간다.

이렇게 된게 내잘못이 아닌데? 누군 이렇게 되고싶어서 이렇게 됐어?

이러한 사람들에게 믿음과 선의는 계산의 요소가 된다. 눈이 멀었다는 두려움과, 스스로를 바라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와주고 선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 나는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61쪽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눈이 멀어있는 상태에서도 눈이 멀었고, 눈을 떴지만 눈이 멀어있는 상태, 책속의 문장이 이야기하는 눈이 먼 자들이라는 말은 믿음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는 자, 선의를 선의의 결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자,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믿음에는 왜 조건이 붙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또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폭력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인간들은 고통과 직접적으로 마주할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고, 숨는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들에게 믿음을 믿음으로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물리치느니, 나에게 있던 ‘책임감’을 버리고 숨는 것이 덜 아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고통이 끝이 나면 괜찮겠지만, 폭력은 계속되고, 고통은 쌓인다. 아프고 아파서, 마음의 병이 난다. ‘눈먼자들의 도시’가 된다.

‘책임감’을 가질 때이다. ‘이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어’ 라는 말로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가지고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마땅히 주어진 인간이라는 ‘책임감’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용기를 내야한다.

1.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아야 한다.

2. 인간은 희망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3.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존재여야 한다.

4.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5. 인간은 스스로의 아픔을 기억해야 한다.

6.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