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익숙한 제목, 그것이 고전의 힘인가?싶습니다. 어디선가? 언젠가? 들어본 문장.

마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 또한 고전문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폴 고갱의 삶에 영감을 얻어 달과 6펜스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낙원을 그린 화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최후의 걸작을 남긴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타히티의 작은 오두막에서 말년을 보내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고갱이 태어날 무렵 프랑스는 극심한 혼란기로 ‘2월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지만, 노동자들의 폭동이 이어지면서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12월 선거에서 보수성향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3세가 신생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진보적 정치부 기자였던 고갱의 아버지에게 이 일은 큰 위기가 됩니다. 결국 고갱의 가족들은 외가가 있던 페루로 망명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10월 30일 페루로 가던 배 위에서 고갱의 아버지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고갱은 중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외항선 선원이나 파나마 운하의 노무자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 주식중개인으로 생활이 안정되자 취미 삼아 그림을 시작하면서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고갱은 기존의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 화면 분할, 강렬하고 굵은 선, 그리고 원색으로 과감하게 현실과 상상을 합친 ‘클루아조니즘(종합주의, cloisonnisme)’를 창안했습니다. 이런 화풍을 따르는 젊은 화가들과 함께 퐁타벤(Pont-Aven)파를 결성했고 고갱의 새로운 화풍은 당시 빈센트 반 고흐를 매료시켰습니다.

1888년 드디어 두 천재가 만나게 됩니다. 프랑스 아를에서 지낸 겨울 두 달간,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됩니다. 고갱과 심하게 다툰 다음 날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고 고갱은 그에 충격을 받아 아를을 떠납니다.

그 후 고흐의 죽음과 얼마 뒤 고흐의 동생 테오마저 사망하자 우연히 읽게 된 타히티 여행기에 매료된 고갱은 1891년 자신의 작품을 팔아버리고 타히티로 떠납니다.

고갱에게 타히티는 낙원이었고 그곳에서 그의 ‘이브’ 테후라를 만납니다. 꿈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고갱은 미친 듯이 그녀를 그렸습니다.  

1893년 6월 4일, 고갱은 타히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옵니다. 왜였을까요? 그의 지난 파리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 아내와 가족? 하지만 이미 고갱의 아내는 그에게서 완전히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여인, 안나. 그녀는 계획적으로 고갱에게 접근했고 결국 아뜰리에에 있는 고갱의 작품을 모두 팔아 도망을 갑니다.

버림받고 이용당한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향합니다. 하지만 타히티의 테후라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뒤였고 고갱의 딸 알린이 열아홉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마저 전해지면서 고갱은 삶의 나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이 그를 버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으로 죽음까지 생각하지만 걸작에 대한 갈망으로 마지막 남은 마음을 다잡아 창작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결국 자신을 대표하는 걸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희망과 삶의 의욕이 모두 사라진 가운데 완성된 작품, 모든 일이 끝났지만 고갱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타히티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했던 고갱은 1903년 5월, 남태평양의 외딴섬 도미니크로 이주하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1904년 파리에 머물며 화가들과 교류했던 몸은 이 때 고갱의 이야기로 작품에 대한 구상을 마치게 됩니다. 몸은 오랫동안 화가 고갱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예술에 대한 깊은 물음,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를 고갱의 이야기라고 할 순 없지만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예술가에 대한 물음을 화가 고갱의 삶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고갱이 ‘스트릭랜드’의 소재라면 ‘나’는 서머싯 몸, 그 자신이 ‘나’의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는 숭엄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장식물로써 우리의 심미감을 만족시켜 준다. 하지만 심미감이란 성 본능과 비슷해서 일종의 야만성을 띠게 마련이다. 예술가는 그러한 점에서도 대단한 재능을 부여해준다. 그 비밀은 불가해한 우주처럼, 해답을 주지않는 수수께끼 같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가장 대수롭지 않은 것조차 기이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가득 찬 개성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그림에 전혀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이란 정서의 구현물이며, 정서란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다.”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작가란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의 즐거움 아닌 어떤 것을 위해 글을 쓴다면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작품을 읽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할 것입니다.

배경, 인물, 심리의 변화, 치밀한 구성, 갈등과 갈등 간의 대립과 상호 작용...

그러나 달과 6펜스의 작품을 통해 스스로에겐 던진 질물은

예술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때로 해석되지 않는 음악과 미술,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산산히 부서뜨리는 그 힘...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과 숭엄함. 그리고 또한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화.

향유로써의 문화 예술.

예술이 밥 먹여 주냐? 빈곤층에겐 그저 사치일 뿐이라고 여겨지는 그 예술.

해바라기, 아몬드 나무, 별이 빛나는 밤, 빛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가난한 노동자의 구두 한 켤레를 연작으로 남겼습니다.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리며 가졌던 작은 소망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 가난한 이들이 그 순간만이라도 위로를 받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거룩한 구두 한 켤레. 이 작품은 후에 하이데거를 통해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존재자와 존재, 구두 한 켤레와 존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정말 인간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의 우리는 하루의 삶도 벅찬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달과 6펜스의 ‘달’은 이상적 세계,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으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싶어 그리는 그림이 아닌 그려야만 살 수 있는 화가, 스트릭랜드

‘그의 목소리에는 진실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열정, 젊음의 상징? 세월지나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열정... 다시 묻습니다. 열정? 삶의 열정이란 선택일까요?

수없이 많은 상념들, 대답없는 질문들의 끝없는 두드림...

‘나’의 말처럼 글쓰는 즐거움이 우리에게 허락될까요?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는 순간,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시간,

어떤 것을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즐거움으로 글을 써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길......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 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 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무엇인가가 가슴을 뒤트는 것 같더니 돌연 어떤 환희의 느낌, 벅찬 자유의 느낌이 가득 차 오르는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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