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 광기와 자유

654쪽 / 수용의 주요한 의미들 가운데 하나인 광인의 감호(監護)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수용을 활용하도록 내버려둔다. 이것은 수용이 다른 유용성의 형태를 박탈당하는 가운데 광기가 사실상 수용을 점유하는 계기이다.

663쪽 / 건강한 빈민에게 노동의 의무가 규정되었고 병자를 보살피는 일이 가족에게 맡겨졌지만, 광인은 사회로 복귀할 수 없었다.

663쪽 / 기독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과 가난이 개인이나 가족의 권역(圈域)에만 속하게 됨으로써 ‘사적인 것’으로 변한 시대에, 광기는 사실상 ‘공적 지위’를 획득하고 사회를 광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감금공간의 규정에 얽매인다.

666쪽 / 피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배제되지만, 그가 죽음에 이를 때가지 내딛는 걸음걸음은 완벽한 가역성(可逆性) 속에서, 그를 추방한 사회의 행복에 유용한 것이 된다.

667쪽 / 동시에 순수한 도덕성이기도 한 완벽한 노동 속에서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노동, 노동의 산물, 노동에 따른 특별수당)과 순수하게 도덕적인 것(미덕, 감독(監督), 보상)이 일치할 때, 피수용자는 자유를 얻는다. 교정시설 자체, 곧 이 완벽한 비세트르는 이중의 정당성을 갖는다. 즉,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오로지 이익일 뿐이고, 내부 세계에 대해서는 거대한 도덕적 정화의 계기이다.

668쪽 / 즉, 수용은 피수용자에게는 도덕통제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경제적 이익이다.

670쪽 / 수용되는 광기와 치료되는 광기, 비이성에 덧붙여지는 광기와 질병에 결부되는 광기가 체계적으로 대비되는 것은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다. 요컨대 근대적 의미에서의 정신이상을 구성하는 그러한 혼동 또는 그러한 종합의 첫 번째 계기가 된 것이다.

671쪽 / 사실상 광인의 배제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배제는 집단의 내부에서 감정과 의무, 이를 테면 연민과 공포, 구제와 안전보장 사이의 타협선(妥協線) 같은 것을 그리게 된다.

673쪽 / 이제는 의료의 기능과 배제의 기능이 하나의 조직 내에서 차례로 작용할 그러한 감호의 형태가 계획된다.

674쪽 / 이제는 광인에게 부드러운 동물성이 있을 수 있다는 주제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동물성은 난폭성으로 광인의 인간적 진실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상자를 가축(家畜)이나 어린이와 유사한 존재로 만드는 본성의 비밀, 잊혀지지만 언제나 친숙한 토대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광기는 더 이상 반 자연 속으로의 절대적 전락이 아니라, 자연에 매우 가까운 본성의 만연(獌狿)이다.

676쪽 / 매우 중요한 단계가 돌파된다. 즉, 수용은 공식적으로 의료활동의 위엄(威嚴)을 띠게 되었고, 수용의 공간은 광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깨어 있었고 막연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광기가 일종의 토착적(土着的) 메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제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치유의 장소가 되었다.

676쪽 / 수용시설의 정신병원으로의 이러한 변모가 고전주의 시대가 배제와 체벌의 기능만을 부여한 그 공간의 내부적 재편성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677쪽 / 이처럼 새로운 가치와 알려지지 않았던 움직임이 수용의 공간에 깃들 때, 오직 그때에만 의학은 보호시설을 점유하고 광기의 모든 경험을 아우를 수 있게 된다.

678쪽 / 광기의 문제는 더 이상 이성이나 질서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라는 관점에서 고찰되고, 어떤 강제권(强制權)도 어떤 자선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잠식할 수 없다.

682쪽 / 이제 수용은 광기가 자체의 진실을 표명하는 매체이고 매순간 광기의 정도를 표시하는데, 광기가 전체적으로 고려되어 판정을 받기에 이르는 것은 바로 수용을 통해서이다.

683쪽 / 드디어 광기는 시선에 노출된다.

684쪽 / 광인은 광기의 추상적 개념에 의해 명확해진 상태로만 시선에 모습을 보인다.

684쪽 / 광기는 더 이상 가장 생경한 모습의 하나로서 실존의 부정성 속에 편입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알려져있는 사물들의 실증성 속에서 점차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있다.

685쪽 / 18세기 말에 형성되는 경험에서는 광기가 대상의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자주성을 상실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93쪽 / 축소할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일상의 세계 밖으로 내몰린 그 세계는 이제 일상적 의식이 그 세계의 재판관이게 되어 있으므로, 별안간 일상적 의식에 친숙하게 되고, 전적으로 도덕의 가장 덜 성찰되고 가장 직접적인 형태에 의해 뒷받침되는 심리학의 표면을 따라 분할된다.

701쪽 / 인간의 진실이 사라지는 그러한 오류의 형태를 유발했던 비이성이 겉모습을 넘어, 현실 자체를 넘어 가장 순수한 진실로 간주된다. 그리고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끌려 들어가 깊숙이 파묻히면서 인간에게 있는 노래 진실한 것을 표명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어떤 작업이 서서히 시작되는데, 그것은 오늘날 마침내 우리의 도덕생활의 주된 모순들 가운데 하나로 귀착된다.

708쪽 / 광기는 대상, 그러나 특이한 지위를 갖는 대상이 되었다. 광기를 객관화하는 동향 속에서 광기는 객관 형태들 가운데 최초의 것, 즉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객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된다.

▶ 튜크와 피넬의 신화로부터의 광기

719쪽 / 의료기능이 분명한 비세트르로 도입되고, 과거에 정신장애로 인해 결정될 수 있었던 모든 수용의 사례가 이제는 가능한 한 정확히 재검토되기에 이른다.

721쪽 / 대혁명 기간 동안 비세트르를 적(敵)이 비이성과 집착하게 섞여 있는 일종의 두렵고 은밀한 세력으로 만드는 공포 속에서, 광기는 두 가지 인간소외의 역할을 차례로 수행한다. 광기는 이성적인 사람과 광인 사이의 위험한 매개 요소로서, 양자를 다같이 소외시키고 양자 모두에 대해 자유의 실현을 위협적으로 방해한다. 진실과 이성의 고유한 작용이 복원되도록, 광기는 어쨌든 ‘좌절시켜야’ 하는 것이다.

728쪽 / 튜크의 ‘은거처’의 신화를 통해 우리는 막연하게 추정되는 그러한 상상적 치유방법과 동시에 19세기로 암암리에 전해지게 될 그러한 광기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확정할 수 있다.

(1) 수용의 역할은 광기를 광기의 진실로 귀착시키는 것이다.

(2) 광기이 진실은 세계, 사회, 반 자연이 빠진 그러한 광기이다.

(3) 이러한 광기의 진실은 인간 자신이 지닐 수 있는 본래부터 양도 불가능한 것이다.

(4) 인간에게 있는 양도 불가능한 것은 자연이자 진실이고 동시에 도덕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 자체이다.

(5) ‘은거처’가 치유력을 갖게 되는 것은 그곳이 광기를 광기의 진실이자 인간의 진실인 하나의 진실로, 질병의 본질이자 세계의 잔잔한 본질인 하나의 본질로 귀착시키기 때문이다.

729쪽 / 이제부터 광기에 관한 모든 객관적 파악, 광기에 관해 표명된 모든 인식이나 모든 진실은 이성 자체, 회복되고 커다란 승리를 거둔 이성, 정신이상의 대단원이게 된다.

한편, 피넬로 인해 비세트르에서 사슬에 묶여 있던 이들은 사슬로부터 풀려나는, 해방을 경험하게 된다.

733쪽 / 사슬이 풀리고, 광인이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광인은 이성을 회복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즉, 이성이 그 자체로서 저절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광기 아래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완벽하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변질도 머뭇거림도 없이 단번에 우뚝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완전한 사회적 범주들이다.

734쪽 / 피넬은 일찍이 확정되어 있는 사회적 유형에 의해 이성의 의미가 정해짐을 이야기하는데, 피넬이 보기에 광인의 치유는 광인을 도덕적으로 인정되고 승인된 사회적 유형에 안정적으로 꿰어 맞추는 데 있다.

735쪽 / 피넬의 ‘사슬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신화는 정신이상의 묘사와 동시에 정신이상의 일소(一掃)에 관한 분석으로서 가치가 있는 추론의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

(1) 고전주의 시대의 수용이 강요하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에서는 광기이 도덕적 진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2) 광기의 도덕적 진실은 자유롭게 나타나게 되자마자 용맹, 충직성, 희생 등 인간관계의 고결한 이상인 것으로 밝혀진다.

(3) 그런데 혁명가들의 맹렬한 위세가 너무나 분명히 보여주듯이 광기는 악덕, 난폭성, 악의(惡意)이다.

(4) 수용시설에서의 해방은 유형(類型)과의 일치라는 주제에 의거한 사회의 재건임에 따라 어김없이 치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736쪽 / 이와 같은 튜크와 피넬의 신화를 통해 수용의 몇 가지 관행을 비판하려는 동일한 노력이 점점 뚜렷해진다. “신체의 질병이 건강의 순수한, 다시 말해서 완전한 상실이 아니라 건강에 있어서의 장애이듯이, 광기는 지능의 측면에서도, 의지와 책임의 측면에서도 이성의 완전한 상실이 아니라 단순한 정신의 혼란, 아직 실재하는 이성 안에서의 모순이라는 이러한 이해를 진정한 심리치료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광기에 대한 이 인간적인, 다시 말해서 합리적인 만큼 너그러운 치료는 이성적인 환자를 전제로 하며, 환자를 이러한 측면에서 맞아들일 확고한 근거는 바로 이러한 전제에서 찾아낼 수 있다.”

▶ 튜크의 ‘은거처’를 통한 권위의 탄생

739쪽 / ‘은거처’에서 종교는 광기에도 역시 이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환자를 정신이상에서 건강한 상태로 도아오게 하는 움직임의 일부분을 이룬다. 종교적 격리는 매우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

740쪽 / 즉, 정신병자를 자기 자신 및 자신의 측근과 토론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친숙한 도덕적 활동의 내부에 위치시키는 것이고, 보호받기는커녕 영속적 불안 속에서 율법과 과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는 환경을 그에게 조성하는 것이다.

740쪽 / ‘은거처’에서 확연히 자리잡기 시작하는 공포는 매우 심층적인 것이다. … 이제 공포는 소외 극복의 힘을 갖추고 있는데, 이 힘은 공포로 하여금 광인과 이성인(理性人) 사이의 매우 근원적인 공조(共助) 같은 것을 복원할 수 있게 해준다. 공포는 광인과 이성인의 결속을 재차 가져다주게 되어 있다. 이제 광기는 두려움을 주지 않게 되어 있거나 두려움을 줄 수 있기는커녕 양식(良識), 진실, 도덕의 가르침에 완전히 내맡겨진 상태에서 ‘두려워하게 된다.’

741쪽 / 공포는 물리적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을 통해 환자에게 직접 환기되는데, 중요한 것은 광란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광기의 발현이 징벌로 이어지게 될 단순한 책임의 영역을 명확하게 정하고 확고히 해두는 것이다.

742쪽 / 튜크의 활동에 일반적으로 부여되는 의미, 즉 정신병자들의 해방, 속박의 폐지, 인간적 환경의 조성 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는데, 보호시설은 광인에게 자기 의식과 관리인에 대한 비상호적 관계인 죄의식을 조직한다.

742쪽 / 죄의식 대문에 광인은 자신과 타자에게 어느 때이건 제공되는 징벌의 대상이 되고, 이 대상의 지위에 대한 인정(認定)과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자각에서 자유롭고 책임있는 주체의식으로, 따라서 이성으로 복귀하게 되어 있다.

743쪽 / 튜크가 “존중의 요구”라고 부르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노동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744쪽 / 시선은 광기의 가장 팡가하기 힘든 징후를 찾아냄으로써 광인을 몰아세우려는 것이게 되어 있고, 광인은 오직 바라봄의 대상일 뿐이어서 이러한 시선을 어떤 형태로도 되돌려보낼 수 없으며, 이 점에서 광인은 이성의 세계에 새로 온 사람, 최근에 도착한 사람과 같다.

745쪽 / 거기에서 노동과 타자의 시선에 사로잡혀 있는 환자의 자유는 죄의식의 확인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한다.

746쪽 / 광기는 보여지는 것으로만 실재할 뿐이다.

746쪽 / 그러다가 19세기의 정신병원에 본질적인 그 시선의 현상이 정신분석에 의해 일소되고, 정신분석이 시선의 말없는 마력(魔力)을 언어의 지배력으로 대체할 대에야 그것은 진정한 대화일 수 있게 된다.

746쪽 / 19세기, 탄압(彈壓)이 아닌 권위(權威)가 탄생한다.

747쪽 / 광인과 비광인이 맞서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비이성의 패배(敗北)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 19세기의 정신병원에 속박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비이성이 해방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광기가 오래 전부터 제압된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 피넬을 통한 보호시설의 체계화

750쪽 / 피넬의 경우에는 어떤 종교적 분리(分離)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해서 튜크에 의해 실행된 분리와 반대방향으로 적용되는 분리가 있다.

753쪽 / 이제 보호시설은 사회도덕의 커다란 연속성(連續性)을 형상화하게 되어 있다. 보호시설에는 가족과 노동의 가치, 즉 사회적으로 인정된 모든 미덕이 군림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중적 군림이다.

755쪽 / 보호시설은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에 따라 피넬의 수중(手中)에서 도덕의 획일화와 사회 고발(告發)의 수단이 된다.

756쪽 / 피넬의 보호시설은 튜크의 보호시설처럼 이 세상에서 뒤로 물러나있는 자연과 직접적 진실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외부한계에서 생겨나는 정신이상을 받아들여 소멸시키는 획일적 법제(法制)의 영역, 도덕적 통합의 장소이게 된다. 이러한 도덕적 통합이 수행될 수 있도록 피수용자의 생활 전체, 감시인과 의사의 행동 전체가 피넬에 의해 체계화 되는데, 이는 침묵, 거울을 통한 자기 인식, 영원한 심판이라는 세 가지 주요한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 의료인(醫療人)의 신격화(神格化)

767쪽 / 18세기 말에 구성되는 보호시설의 세계에 특유한 구조에는 침묵, 거울을 통한 자기 인식, 영원한 심판 외에도 네 번째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의료인(醫療人)의 신격화(神格化)이다.

768쪽 / 의사는 보호시설의 핵심적 형상이 된다. 의사는 입소(入所) 여부를 결정한다.

768쪽 / 의사의 개입은 의사만이 보유하고 일단의 객관적 지식에 의해 정당화될 앎이나 의료권력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호시설에서 ‘호모 메디쿠스(의료인)’가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학자로서가 아니라 현자(賢者)로서이다.

771쪽 / 피넬이 생각한 의료인은 질병의 객관적 정의(定義)나 분류적 진단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가족, 권위, 처벌, 사랑 등의 비결이 포함된 그러한 마력(魔力)에 기대어 처신하게 되어 있다.

772쪽 / 의사의 현존과 말은 단번에 과오를 드러내고 도덕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그러한 소외극복의 힘을 부여받는다.

772쪽 / 광인은 완전한 통일성 속에서 의사와 함께 일종의 짝패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광인과 의사의 짝패에서는 매우 오래 전부터의 귀속관계에 의해 암묵적 공조(共助)가 시도된다.

773쪽 / 피넬과 튜크 이후로는 정신의학이 특별한 방식의 의학으로 변하게 된다.

773쪽 / 의사의 도덕적 행동이 과학적 능력과 꼭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피넬이 튜크처럼 강조하는 데도 불구하고, 누구를 막론하고 특히 ‘환자’는 의사에게 투사하는 그러한 힘이 이상적이고 안전한 상관계수(相關係數), 즉 무기력 이외의 다른 저항을 내보이지 않을뿐더러 점점 더 자주성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776쪽 / 파넬과 튜크가 수용을 통해 정비한 모든 구조를 프로이트는 의사 쪽으로 넘어가게 했다.

▶ 자유로부터 멀어진 자유, 진실의 상실

780쪽 / 끈질기고 동시에 불안정한 자유, 이 자유는 광기의 지평(地平)에 언제나 머물러 있지만, 누구라도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면 모습을 감춘다. 이 자유는 임박한 소멸의 형태로만 현존하고 실재할 수 있다.

781쪽 / 고전주의적 광기가 실재할 수 있게 되는 출발점으로서의 자유는 이와 같은 광기 자체 속에서 질식하고, 이러한 모순을 가장 냉혹하게 드러내는 것 속으로 전락한다.

781쪽 / 즉, 이 자유는 광인이 미치게 되는 이유이자, 광기가 아직 주어지지 않는 가운데 광인이 비(非) 광기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782쪽 / 이제부터 광인은 완전히 자유롭고 자유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 … 이제는 이미 자유를 상실한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다.

784쪽 / 피넬과 튜크가 광인에게 부과한 자유는 광인을 광기의 어떤 진실 속에 감금하는데, 광인은 자신의 광기에서 해방될 때 수동적으로만 그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784쪽 / 이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진실 속에서 억류(抑留)되고 이런 방식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자기에 대한 국외자, ‘정신병자’

▶ 광인의 언어로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

785쪽 /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기를 위한 자율적 언어 또는 광기가 자기에 관해 진실한 언어를 말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광기이 문학이 없다.

787쪽 / 고전주의 시대 이후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의 오랜 침묵을 넘어 언어를 되찾는다. 이 언어는 더 이상 세계의 비가시적 형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밀한 진실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언어이다.

797쪽 / 광기의 가장 구석진 본질을 추적함으로써 광기의 최종적 구조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문제였을 때, 사람들은 광기를 표명하기 위해, 정신착란의 완벽한 논리 속에서 전개된 이성의 언어만을 찾아냈을 뿐이며, 그러한 이성의 언어는 광기를 접근 가능하게 만들었고 광기를 광기로 인식하면서 교묘히 광기를 모면했다. 이제 인간은 광기를 통해,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이성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눈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진실이 될 수 있기에 이른다.

801쪽 / 이제부터는 광인이 언어를 지니고 언어로 둘러싸이는데, 이 언어는 결코 고갈되지 않고 언제나 다시 시작되며 상반되는 것들의 작용 때문에 외부로 향하지 못하는 언어, 인간을 광기 속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처럼 보이게 하는 언어이다.

801쪽 / 광인은 더 이상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분할된 공간에 갇힌 ‘미치광이’가 아니라, 질병이 근대적 형태에 들어맞는 ‘정신병자’이다.

803쪽 / 오늘날 인간은 광인이기도 하고 광인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에서 광인이라는 수수께끼를 통해서만 진실을 내보이고, 인간성의 전락하는 움직임 속에서 인간의 정체를 폭로하는 각 광인은 인간의 그러한 진실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지니고 있지 않기도 한다.

▶ 근대(近代)의 광기

815쪽 / 광기의 책략(策略)과 새로운 승리. 즉,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헤아려보고 광기를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는 심리학이 노력과 논쟁 속에서 니체, 반 고흐, 아르토의 과도함 같은 작품들의 극단성(極端性)과 씨름하므로, 이 세계가 결백을 입증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광기 앞에서이다. 그리고 이 세계 안의 어떤 것도, 특히 이 세계가 광기에 관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광기의 작품들에 의해 이 세계가 정화된다는 것을 이 세계에 확신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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