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의 원어 제목은 <Histoire de la folie a 1‘age classique>으로, 직역해본다면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뜻한다. 즉 <광기의 역사>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가 유럽 사회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지음은 <광기의 역사>를 읽고 푸코가 기록한 수많은 광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고전주의의 각 시대별 흐름에 따라 정리하기로 했다.

▶ 중세 시대 (~15C)

중세 초부터 십자군 전쟁 말기까지 유럽 전역에 퍼진 나병으로 인해, 이들을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후 15세기 말에 나병(癩病)은 서양 세계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p.41), 나환자 수용시설과 같은 구조는 두세 세기 뒤에도 이상할 정도로 유사한 축출의 장치로서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p.47). 나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은 바로 ‘광기(狂氣)’이다(p.50).

중세 유럽은 나병으로 인해 죽음이 난무했고, 사람들은 현현하는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위협을 느꼈다. 죽음을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더라도 죽음들은 이미 곳곳에 존재했고, 오히려 광기는 죽음이 내 앞에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생겨났다. 그러다가 15세기 말 나병이 사그라들며 죽음에 대한 불안은 더 이상 퍼져나가지 않고, 불안은 광기의 냉소성(冷笑性)으로 대체된다(p.63). ‘죽음은 인간의 종말이자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존재한다.’라는 필연성은 인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이에 삶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죽음의 난무로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엔 ‘아무것도 아닌 삶’, ‘삶의 허무(虛無)’가 자리를 잡았는데, 삶의 허무의 가시적인 대상인 ‘나병으로부터의 죽음’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삶의 허무는 인간 내부의 실존으로써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형태인 ‘광기’로 체험된다. 광기는 인간의 삶에 ‘이미 와 있는 죽음’인 것이다(p.64).

▶ 르네상스 (~16C)

이후 인간을 그려내는 예술과 인본주의 사상이 꽃을 피우며, 동시에 광기는 사회적 지평 위로 떠오르게 된다(p.69).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동안 광기에 대한 두 가지 대립적인 시각, ‘현혹적 형태들과 접하면서 우주적 질서로 경험하는’ 비극적 시각과 ‘냉소적인 태도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광기를 비판적으로 경험하는’ 비판적 시각이 생겨난다.

Trittico delle Tentazioni di sant'Antonio

광기에 대한 ‘비극적’ 시각은 르네상스 시대에 자유로워진 이미지의 틀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는 지혜와 교훈이 있어서 이미지에 질서의 틀이 부과되었던 것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지가 그러한 지혜와 교훈에서 풀려나 자체의 고유한 광기를 중심으로 맴돌기 시작한다(p.67).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광기에 대한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낳는다. 틀에서부터의 해방은 의미의 급증, 의미 자체에 의한 의미의 증가에서 기인했고, 이미지는 오로지 수수께끼 같은 모습만을 내보일 뿐이었다(p.69). 이러한 이미지들은 매혹적으로 느껴지는데, 매혹의 힘은 인간 본성의 한 비밀인 ‘동물성’에서 찾을 수 있다(p.70). 인간의 내면 속에 있는 침울한 격노, 빈약한 광기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동물성이다(p.71). 반면 이와 같은 어두운 본성의 반대편 극단에서 광기는 ‘앎’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형상들은 인간에게 매혹적인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 광기는 인간, 인간의 약점, 인간의 꿈과 환상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고(p.78), 광인은 이 앎 전체를 완전한 형태로 갖고 있다(p.72). 따라서 광기는 객관적 진실이나 세계와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이 자기 자신이 진실로 인지할지도 모르는 모습과 관련된다(P.79). 광기의 영향력은 이처럼 인간 스스로에 대한 진실을 아는 순수한 직관의 공간에서 행사되고, 직접적 이미지와 풀리지 않고 남겨진 수수께끼의 이야기는 15세기 회화에서 ‘세계의 비극적 광기’로 전개된다(p.83).

“자, 이제 나의 동무들을 소개합니다…. 눈썹을 찡그린 동무는 필라우티(자만심)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눈웃음치고 손뼉을 치는 동무는 콜라시(아첨)입니다. 반쯤 잠들어 있는 듯한 동무는 레테(망각)입니다. 팔굼치를 괴고 두 손으로 깍지를 끼어 머리를 기대고 있는 동무는 미조포니(게으름)입니다. 장미 화관을 쓰고 향유를 바른 동무는 에도네(관능)입니다. 눈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동무는 아노이아(경솔)입니다. 살이 포동포동하고 얼굴빛이 화사한 동무는 트리페(나약)입니다. 그리고 이 젋은 여자들 사이에 두 명의 신이 있는데, 그들은 소중한 하녀와 깊은 잠입니다.”

- 76쪽, 에라스무스의 <광기의 예찬> 中

반면 비판적 시선은 광기로부터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의 충분한 거리를 두고 광기를 인식한다(p.80). 에라스무스의 <광기의 예찬>에서는 보슈의 그림과 달리 광기가 세계의 어느 곳에서건 인간을 위협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인본주의 전통 속에서 광기는 ‘담론’의 세계에 포획되는데, 담론은 언제나 ‘지혜를 가진 현명한 자’라고 일컬어지는 주류의 시각에서 만들어지며, 지혜에 대해 광기는 어디까지나 광기이다. 즉, 광기는 비극적인 어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광기는 결정적인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결코 진실과 세계에 대한 결정적 발언이 ‘아니고’, 광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단지 ‘인간의 비판 의식’에만 관련될 뿐이다(p.84).

르네상스 시대까지도 두 가지 갈래로 존재하던 광기에 대한 시선은 결국 하나의 시각으로 매몰되고 만다. 비극적이고 우주적인 경험은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비판의식에 의해 은폐되고만 것이다.(p.85). 결국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확대가 아닌 인간의 축소였다(p.87). 그런데 이러한 16세기 비판적 반성의 특권적 지위는 어떻게 확립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푸코는, 광기와 이성은 영속적으로 가역적(可逆的) 관계를 맺으며, 심지어 광기는 이성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됨을 이야기한다. 이성과의 상관성 아래에서만 광기가 실재하기에, 준거가 되는 이성이 무엇인가에 따라 광기가 이성이 될 수 있고, 이성이 광기가 될 수 있는 가역적인 관계를 맺는다(p.87). 그리고 이성의 광기를 맞아들이는 “현명한 광기”가 존재한다는 광기의 진실은 이성의 승리와 빈틈없이 일치하는 것이 되고, 결국 광기에 대한 이성의 결정적 제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p.92).

이러한 이성과 광기의 관계로 인해 결국 이성의 손을 들어주게 되었고, 광기에 대한 비극적 시선은 비판적 시선에 은폐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광기는 세계, 인간, 죽음의 극한에서 종말론의 형상이기를 그쳤으며, 광기가 고정된 시선을 지니고 불가능의 형태들이 생겨나는 그러한 어둠은 사라졌다(p.107). 오로지 이성, 옳고 그름의 판단에서의 광기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광인들의 배가 아니라 구빈원이 문제된다(p.107).

지음은 다음주 구빈원의 등장과 대감호 시대의 도래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정리하기로 했다.

[사진] wik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