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구성하고 속해있는 개인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구조에 적응하거나 때로는 저항하며 살아간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구조는 변하기도 하지만 개인이 구조에 의해 희생되기도 한다. 그러나 희생은 개인과 구조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구조의 정점에 있는 개인은 구조에서 취약한 개인을 약탈하고 편취하여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 시킨다. 이 과정에서 정점에 위치한 개인은 사회 구조에게 탓을 돌리며 타인을 착취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숨는다. 시선을 사회구조 또는 타인으로 돌려서 자신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 비겁한 모습을 보인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구조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악인이 탄생하고, 수많은 분노가 발생해 사회를 병들게 한다.우리는 이 모습을 현재 한일관계에서,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또다른 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식민지를 세워 무단통치를하던 시기에, 수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희생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불법적으로 우리의 성과 노동력을 착취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했으며, 한 국가의 주권을 빼앗고 무단으로 통치한 과거에 대해서 일본은 왜 사과하지 않는 것 일까?

이 질문은 요시다 슈이치가 꼬집었던 일본 사회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악인]에서, 등장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고, 결정을 내리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며 문제의 책임을 또 다시 자신 밖으로 돌린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당했다” “나도 할 만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싶어하는 비겁한 악인이며,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을 무시한 채 강력한 힘과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분노의 사회가 된다.

“우리는 이미 위안부 문제에 수도 없이 사죄를 해왔다. 더 이상 과거사의 문제에 대해 사죄 하는 것이 대물림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행위가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

아베 총리가 과거 문제에 대해 한 발언은 그 목적이 진정한 사과에 있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을 회피함에 있는지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악인]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존과 권력을 위해 수많은 개인을 희생시켰던 사례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일본의 식민 무단 통치가 끝나고, 대한민국 영토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한미군 주둔 기지 인근에는 ‘기지촌’이 세워졌는데, 그 곳에는 먹고 살 방법이 없던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여들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초 자본을 들이지 않고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기지촌의 여성들이 미군들을 상대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그들을 ‘숨은 애국자’ 라고 격려하며 기지촌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외화벌이에 이용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군들은 기지촌의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정부는 그것을 조용히 처리하거나 묵인하였다. 되려 기지촌의 위생을 관리하는 등의 정화작업을 통해 미군을 지속적으로 주둔시켜 국가의 안보를 강화하고, 자신의 국내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를 했다. 현재 한일 양국간의 과거사 문제에 비해 ‘기지촌’의 문제는 덜 부각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분명한 ‘악인’이 존재하며, 이것을 묵인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현재에도 또 다른 악인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사의 문제는 과거만의 문제일까?>

인간의 존엄성은 모두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존엄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다. 따라서, 누군가의 존엄성이 짓밟혔던 문제는 그것이 일어났던 시간과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 우리가 그때의 문제를 과거만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또 다시 그 문제의 책임을 회피하고 비겁하게 숨는 악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악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태도는 인간이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악인]을 통해 본 세상의 문제들은 생각보다 인간이기 위한 노력이 많은 곳에서 필요함을 느끼게 하였고,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 내부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 노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