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라는 개념이 과연 죄를 지은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본 결과, ‘우리 모두는 악인이 될 수 있다’라는 말과 함께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공존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요시다 슈이치의 다음 작품 ‘분노’를 영화로 함께 보며 그가 그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가 보기로 했다.

분노. 이상일. Toho Co., Ltd. 2017.

무더웠던 여름, 도쿄에서는 평범한 부부가 끔찍하게 살해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살인 현장에는 피로 쓰여진 ‘분노’라는 글씨가 남겨져 있었고, 그로부터 1년 뒤, 용의자의 몽타주와 비슷하게 생긴 세 남자 나오토, 타시로, 타나카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출신 성분을 모르지만 나오토가 보여주는 잔잔함과 어두운 내면에 안정감을 느끼는 유우마,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게 된 어두운 모습의 타시로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아이코, 무인도에 살고있는 타나카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그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이즈미까지, <분노>는 인간 내면에 있는 분노가 사회에 의해 억눌려지고 점점 쌓이게 될 때 어떻게 분출되고 표현되는지,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며 묘사되고 전개된다.

'억눌렸던 감정은 어떻게 분노가 되는가?'

불안정했던 자신들의 삶에서 또다른 불안정한 상태의 남자들이 주는 안정감은 그들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유우마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토를 살게 해주고, 아이코 또한 타시로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며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살인사건의 수사가 진행되고, 살인범의 몽타주가 언론에 보도되자, 유우마와 아이코는 둘 다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점점 믿지 않기 시작한다. 유우마는 경찰에서 나오토 관련 전화가 오자 모르는 사람이라고 전화를 서둘러 마무리하기도 하고, 아이코는 타시로를 살인사건 관련 용의자로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자신을 믿어줬던 사람을 믿지 않았다는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은 자신에게 분노를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한편,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군에 의해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이즈미를 지켜봐야만 했던 소스케는 그를 위로해주고 그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타나카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 후 타나카는 사실 그 상황을 처음부터 다 지켜보면서, 이즈미를 돕지 못한 본인의 모습에 소스케처럼 분노했던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케는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타나카를 보며 인간적인 혐오감을 느낀 소스케는 타나카를 살해하고, 후에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다'는 말을 남긴다.

아이코와 유우마의 이야기는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하게 되는 모습이고, 소스케의 경우는 타인에 대한 분노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분노는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다. 소스케 또한 타인이 자신에게 주는 믿음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닌, 타인의 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후에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 자신에 대한 분노의 책임을 타인에게 모두 전가시키려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인간은 왜 분노를 하게 되는것일까?’

<분노>에서는 다양한 원인들과 형태로 분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의 이유는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시다 슈이치가 <악인>,<분노>에서 그리는 인간은 모두 하나같이 평범하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는 폭력적인 상황은 공통적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행위들이 타인에 의해 밝혀지거나, 타인에게 동정을 사게 되었을 때 이들은 하나같이 폭력적이게 되거나, 피해자이길 원한다. 겉으로 보면 분노는 단순히 타인과 나의 믿음의 관계로 보여질 수 있지만, 내 마음 깊은곳에서 나오는 감정인 ‘분노’는, 나의 마음이 온전히 나로 남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비겁한 선택을 하는 스스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감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2년 반에 걸친 그의 도주 행보나 사건 자체보다는 공개수사 후에 물밀듯이 밀려온 수많은 제보쪽에 더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길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와 친밀한 사람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의 원경'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술렁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 요시다 슈이치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분노하는 인간의 폭력성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아픔 뒤에 단단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아이코와 이즈미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이는 곧 자신의 내면의 분노와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우고, 더 이상은 나 스스로에 대해 비겁해지지 않겠다는 인간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내면의 분노를 치유하고, 성숙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희망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누군가는 분노에 지배당하고, 누군가는 사랑일지 모르는 감정을 매개로 분노에서 빠져나오며, 누군가는 죽을 힘을 다해 자기 안팎의 분노와 폭력에 맞섭니다.”

- <분노> 이상일 감독 인터뷰 中 -

분노는 비겁한 내가 나를 바라보는 감정이다. 그것은 나를 폭력적이게 할 수 있으며, 진정한 분노의 치유는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보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인간의 내면은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주, 우리가 바라본 일본의 모습과 함께 한일 문제, 한일 관계를 짚어보며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이미지 출처] "분노 | 다음영화", Daum,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6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