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발제자 조현준

21.10.07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17p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 23p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전에 능선으로.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가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 27p

경하는 4월에 있던 폭력의 기억에 관한 글을 쓴다. 자신이 쓴 책과 폭력의 기억이 스스로를 괴롭힌 여름내내 경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다. 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올때쯤, 경하는 자신의 꿈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인선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향한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 40p

“그렇게 안되도록 삼분에 한번씩 이걸 하는 거야. 이십사 시간 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 41p

“새로 선혈이 흐르며 더 성이 나 부풀어오른, 그전에도 부어 있었던 그녀의 손가락들을 나는 뚫어지게 들여다 봤다. 더 지켜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든 순간 인선과 눈이 마주쳤다.” - 41p

“오지 않는 약속 상대를 기다리며 소란한 카페 구석에 웅크려 앉아 문쪽을 바라볼때, 또다른 악몽에서 깨어나 고개를 떨며 천장의 어둠을 올려다 볼 때, 그 모르는 벌판에 눈이 내리고 검은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밀려들어온다고. 그러니 같이 통나무를 심어 먹을 입히고, 눈이 내리길 기다려 그걸 영상으로 담아보면 어떻겠느냐고.” - 46p

경하와 인선이 하려던 작업은 경하의 사정으로 인해 끝없이 미뤄지고, 연기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경하는 인선에게 프로젝트를 하고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인선은 그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나무를 절단하다 손을 다쳤다.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 51p

병상에 있는 인선은 혼잣말을 하듯, 경하에게 이야기한다.

“까무러칠 것같이 아팠는데, 정말 차라리 까무러치고 싶었는데, 왜 그때 네 책 생각이 났는지 몰라. 거기 나오는 사람들, 아니, 그때 그곳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아니, 그곳 뿐만 아니라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들 말이야.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개가 잘린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 57p

그때 경하는 인선이 계속 꿈속의 검은 나무들을 생각해왔음을 깨닫는다. 인선은 경하에게 자신이 연락한 이유는 프로젝트 때문이 아닌 부탁할 것이 있어서라고 이야기한다.

“제주 집에 가줘, 오늘 해떨어지기 전에.”

“안그러면 죽어.”

“누가?”

“새”

“아미가 몇 달 전에 죽어서, 지금은 아마만 있어.”

“아마가 아직 살아 있는지 봐줘. 살아있으면 물을 줘.”

“네가 가주면 좋겠어. 경하야. 그 집에서 아마를 돌봐줘. 내가 퇴원할 때까지만.”

폭설을 뚫고, 몇 시간에 한번씩 버스가 다니는 인선의 집에 다다르는 동안, 경하는 인선과 함께 살던 엄마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훅, 하고 뜨거운 게 명치에서부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면 견딜 수 없었어. 집이 싫었어. 외딴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삼십 분 넘게 걸어야 하는 길도 싫고, 언젠가부턴 엄마가 싫어지기 시작했어. 그냥 이 세상이 역겨운 것처럼 엄마가 역겨웠어.” - 77p

“결국 집을 나온건 살고 싶어서였어. 그러지 않으면 명치에 있는 불덩이가 나를 죽일 것 같아서.”

“엄마는 요 아래 실톱을 깔고 잤어. 날카로운 쇠붙이를 깔고 자야 악몽을 안 꾼다는 미신을 엄마는 믿었거든. 하지만 실톱을 깔고도 엄마는 자주 꿈을 꿨어. 숨을 죽여 몸서리를 치고, 이따금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어. 그 모습, 그 소리가 나한텐 지옥이었어. 저사람이 내 인생을 더이상 어둡게 채색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구부정한 등과 끔찍하게 여린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집을 나온 인선은 공사장 축대에서 발이 미끄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열흘 뒤 깨어난 인선은 병원에 온 엄마를 만난다.

“인선아, 대답해보라. 나 알아보크나?”

“내가 다친걸 진작 알았다고 그때 엄만 말했어. 내가 축대에서 떨어졌던 그 밤에 꿈을 꿨다고 햇어. 다섯살 모습으로 내가 눈밭에 앉아 있었는데, 내 뺨에 내려앉은 눈이 이상하게 녹지를 않더래. 꿈속에서 엄마 몸이 덜덜 떨릴 만큼 그게 무서웠대. 따뜻한 애기 얼굴에 왜 눈이 안녹고 그대로 있나.”

“내가 퇴원해서 함께 제주 집으로 돌아간 밤에 엄마는 한번 더 그 눈송이 이야기를 했어. 이번엔 그 꿈 이야기가 아니라, 그 꿈이 기원한 생시 이야기를. 아직 회복도 안된 나에게 또 다시 도망갈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밤새 곁에 누워서 내 손목을 잡고, 잠결에 놓았다가도 흠칫 놀라 다시 꽉 붙잡으면서.”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 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눈때문에 얼굴이 얇게 얼어있었대.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그날 똑똑히 알았대.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걸.” - 84p

인선과 그녀의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하며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향한다.

눈길 속에서 발을 헛디뎌 비탈 아래로 떨어진 경하는 추위 속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낀다.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가 있어.”

경하는 새를 위해, 아직 살아있는 전류같은 생명을 위해, 어두운 그 길 속에서 어른거리는 빛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인선의 집을 찾는다.

“아마.”

“내가 살리러 왔어.”

“움직여봐.

내가 구하러 왔어”

“부드러운 것이 손끝에 닿는다. 더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것이.”

죽은 아마를 묻어주고, 경하는 폭설로 인해 전기와 물 모두 끊긴 인선의 집에서 잠을 청한다.

잠에서 깬 경하 앞에는 인선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눈앞에 있었다.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거야? 완성되지 않는거야 작별이?”

경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질문을 인선에게 한다.

“어떻게 이곳에서 혼자 지낼 수 있었어?”

“혼자가 아닌데, 나는.”

“아마가 있잖아.”

“아미는 죽었어, 여러달 전에. 아마는 사흘 물만 먹었어. 그렇게 좋아하던 오디도 안먹었어.”

“우리는 대화를 나눴어. 너도 봤지.”

“사실은 어떤 말도 나눠진 적 없었던 걸까? 새는 새였고 나는 인간이었을 뿐일까?”

“하지만 모든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건 아니야. 아직은”

인선은 새와 작별하지 않는다. 아직은, 작별하지 않았다.

경하와 인선은 대화를 나눈다. 흰 새에 대해, 전류같이 흐르는 생명에 대해, 그 생명을 지키려 했던 그 날에 대해.

“보여줄 게 있어.”

“나는 바닷고기를 안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가, 내가 안 먹어 젖이 안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 해진 다음 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 225p https://youtu.be/kuKjdTiluuc (손녀의 편지)

“두 자매가 마을로 돌아왔을때, 시신들은 국민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교문 건너 보리밭에서 눈에 덮여 있었어. 거의 모든 마을에서 패턴이 같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였어.”

“엄마를 잘 몰랐어.

지나치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인선과 경하는 그날에 대한 기억을 따라가다, 누군가 소중히 모아둔 신문과 글자들을 마주한다.

“경북 지역 보도연맹원 1만여 명

대구형무소1천 5백명 재소자

경산 코발트 광산 및 인근 가창골

학살지 유해 수습 발굴”

“이해할 수 없다. 오십 팔년 전 E일보 기사를 누가 오리고 밑줄을 그었을까?”

“엄마 옷장 서랍에서 나온거야. 엄마는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글씨를 썼어. 모든 획을 사십오도로 꺾어서.”

그 뭉치 속에는 또다른 편지도 있었다.

“나

게”

“내가 나가면 너는 스물 한살, 정숙이는 스물다섯 나는 스물 여덟 아니냐 보고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마는 눈물 흘릴 것이 무어 잇나 쇠털같이 많은 말을 만나 옛이야기 할 수 있는데 정숙이에게 그리 일러주어라.”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 모아둔 편지꾸러미와 신문은 외삼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날, 자수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군의 약속에 산속 동굴에서 내려왔던 외삼촌.

이후 정심은 외삼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다 모았다. 시내로 나가서, 직접 경산으로 가서, 외삼촌이 있을만한 모든 곳에 직접 갔고, 모든 신문의 자료를 모았다.

결국 엄마는 실패했어. 뼈를 찾지 못했어, 단 한조각도.”

그때 경하는 꿈의 내용이 떠오른다.

“무릎까지 차올랐던 그 바다 아래.

쓸려간 벌판의 무덤들 아래.”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 삼년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정기적으로 그 광산을 방문했다는 걸 나는 몰랐어. 엄마가 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때 엄마 나이가 일흔 둘에서 일흔넷,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때야.”

“경산 유족회 총무가 손전등을 들고 일행을 안내해 주었대. 모두 헬멧을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었대. 그때 엄마가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그 사람 소매를 잡으면서 가만히 웃었다고 했어. 미안허우다. 잠깐만 신세 지쿠다예.”

“당시 생존자가 세 명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제 생각엔 한 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인근 민가의 문을 세군데 두드린 거 아니겠습니까?”

“피투성이 옷을 입은 앳된 청년이 갈아입을 옷을 달라고, 이 집에서 옷을 얻은 걸 아무한테도 말 안할 테니 부탁한다고 사정했대요. 그 청년은 그걸 받자마자 얼른 마당에서 갈아입고 날래게 달음박질 쳐서 사라졌답니다.”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엄마가 쪼그려 앉아 계속 토하고 있었다고 했어. 위액만 게워져 나올때까지 계속.”

“그 청년이 외삼촌이었을 확률이 0은 아니야. 지금 갱도에 있는 삼천 구의 유해 중 어떤 것도 외삼촌일 수 있는 것처럼.”

경하는 정심의 이야기를 듣고, 인선과 함께 나무를 심을 땅을 보러 간다. 외삼촌이 정심에게 주었던 작고 단단한 산열매를 보고, 인선이 정심과 걸었던 그 땅의 기억을 본다.

“여기 쯤 멈춰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 311p

“무섭지 않았어. 아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만큼 행복했어. 고통인지 황홀인지 모를 이상한 격정 속에서 그 차가운 바람을. 바람의 몸을 입은 사람들을 가르며 걸었어. 수천 개 투명한 바늘이 온 몸에 꽂힌 것 처럼. 그걸 타고 수혈처럼 생명이 흘러들어 오는 걸 느끼면서. 심장이 쪼개질 것 같이 격렬하고 기이한 기쁨 속에서 생각했어. 너와 하기로 한 일을 이제 시작할 수 있겠다고.”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것 처럼” - 325p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정심의 마음을 매 순간 들여다 보았고 그 사랑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습니다. - 한강

작별하지 않는것. 내가 사랑했던 모든것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떠올릴때 숲속의 바다는 물밀듯이 들어온다. 기억하는것은 잃지 않는 방법이다. 경하와 인선은 정심이 보았던 그 바다의 땅에 간다. 그리고 정심의 기억과 작별하지 않는다.

그 아픔의 기억이, 작별하지 않음으로써 선명해진다. 이것은 아픔의 기억보다는, 사랑의 기억으로 남는다.

어두운 경하의 꿈은, 함께하는 인선과 성냥불의 빛으로 밝혀진다. 고통을 느끼고, 아파할 줄 아는 것이 빛으로 향할 수 있는 것 처럼,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경하는 마침내 빛을 찾는다. 그리고 죽음 속의 삶을 단단히 맞이한다.

“죽음 속의 삶, 삶 속의 죽음에 언제나 관심이 있는데, 글을 쓰다보면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제 안에 생명이 있기에 식물처럼 자연스럽게 빛으로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빛이 없는 경우라면 잠시 성냥불을 당겨 빛을 만들어서라도 나아가는 일이 글을 쓰는 행위라는 생각을 이즈음 하고 있습니다. -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