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

알베르 카뮈

1부

‘오늘 엄마가 죽었다.’ - 1p

<이방인>에서는 세가지의 죽음이 묘사된다. 처음은 엄마의 죽음이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양로원으로 향한다. 그는 ‘습관적’으로 울었던 엄마의 옛날 모습을 떠올린다.

‘사실이 그랬다. 집에 있을 때면, 엄마는 언제나 아무 말도 않고 눈으로 나를 좇으며 시간을 보냈다. 양로원으로 온 처음 며칠 동안은 자주 우셨다. 그러나 그건 습관 때문이었다. 만약 몇 달 후에 그곳에서 나오게 했다면 그때도 아마 우셨을 것이다. 역시 습관 때문에. 그 마지막 해에 내가 그곳에 거의 가지 않은 데도 어느정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 18p

‘자리에 앉은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고갯짓을 했는데, 이 없는 입 속으로 입술이 말려들어가 있어서, 그것이 내게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그냥 신경성 안면 경련인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거기 모여 있는게 아닌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 24p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조차 몰랐기에 매우 놀랐다. 나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길 바랐다.’ - 25p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그걸 인식하지도 못했다. 나는 심지어 그들 한가운데 누워 있는 이 죽은 여인도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6p

‘나는 피곤했다. 수위가 나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주어서 간단히나마 씻을 수 있었다. 다시 카페오레를 마셨는데 아주 맛이 좋았다. 밖으로 나서자 해가 완전히 떠올라 있었다.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교외에 나와 본 것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나는 만약 엄마 일만 아니었더라면 산책을 하면서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을까 싶었다.’ - 27p

‘마지막으로 우리를 따라잡았을 때 페레의 그 얼굴, 짜증과 피로로 인한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뺨을 적시고 있었다. 엄마의 관 위로 뿌려지던 피처럼 붉던 흙더미, 그속에 섞여지던 풀뿌리의 흰 속살, 더 많은 사람들, 목소리들, 이제는 드러누워 열두 시간동안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나의 기쁨.’ - 34p

장례식에서의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넘치게 표현되는 공간에서 뫼르소는 그들의 슬픔이 누워있는 엄마를 향해 있는건지, 슬퍼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취해있는건지 의아해한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장례식을 대하는 그의 무덤덤한 태도에 양로원의 사람들도 적잖이 의아해 한다.

장례식 후 주말을 맞은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며 주말을 보낸다.

‘언제나처럼 또 한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42p

‘사장은 친절했다. 그는 내게 너무 피곤하지는 않은지 물었고, 역시나 엄마의 나이를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육십 정도”라고 말했는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사장은 안도하는 듯한 눈치였고, 그 문제는 끝났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 43p

뫼르소의 이웃인 레몽은 여자친구와 다툼이 잦다. 한번은 여자친구의 뺨을 때려 경찰서에 간적도 있는데, 레몽은 뫼르소에게 자신의 증인이 되어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뫼르소에게 레몽은 만족스러워 한다.

‘그는 내게 경찰의 따귀에 대응하기를 기대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게다가 나는 경찰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레몽은 매우 흡족해 했다.’ - 59p

‘그는 내게 자신의 증인 역할을 해줘야겠다고 말했다. 내게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59p

그 일이 있은 후, 뫼르소는 마리와 함께 알제 인근에 있는 레몽 친구의 별장에 초대받는다. 그들은 함께 일요일을 보낸다.

‘나는 태양이 가져다주는 좋은 기분을 느끼느라 더 이상 그의 습관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발밑에서 모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햇볕은 모래 위로 거의 수직으로 떨어졌고, 바다위로 반사되는 빛은 견디기 버거웠다. 우리는 바다로 향했고 물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해변 저 끝에서 푸른 작업복 차림의 아랍인 두 명이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레몽을 바라보았고, 그가 “그자야” 하고 말했다.’

레몽에게 원한이 있는 아랍인을 해변에서 마주치자 그들은 해변 근처에서 싸움을 벌이게 된다.

‘레몽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녀석이 어떤 값을 치르는지 보라구!”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조심해. 그자가 칼을 갖고 있어!” 그러나 레몽의 팔은 이미 베였고 입은 찢어졌다.’ - 80p

‘그는 팔에 붕대를 감고 입 한 귀퉁이에는 넓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해변에 나가 봐야겠다고 레몽이 말했을때, 어디로 갈 참이냐고 내가 물었다. 레몽이 혼자 가겠다고 욕을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 81p

‘우리는 마침내 저 멀리 해변 끝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모래 사이로 흐르고 있는 작은 샘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두 명을 발견했다. 그들은 누워 있었는데, 기름때가 절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평온하고 거의 만족스러워 보였다.’ - 81p

‘이윽고 레몽이 권총이 든 그의 주머니에 손을 댔지만 상대편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고,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저녀석 맛을 봬줄까?” 레몽이 내게 물었다. 나는 만약 내가 아니라고 하면 그가 제풀에 흥분해서 틀림없이 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단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런식으로 쏘는건 너무 형편없는 짓이야.” - 82p

‘내가 레몽에게 말했다. “넌 남자대 남자로 대해, 그리고 네 총은 내게 줘. 만약 다른 하나가 개입하거나, 그가 칼을 뽑으면 내가 맛을 봬줄게”’ - 82p

‘레몽이 내게 권총을 건네 주었을 때, 햇볕이 그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마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닫혀 버린 듯이. 바다와 모래, 그리고 태양, 그리고 피리와 물이 만들어내는 이중의 침묵 사이에서 여기 모든 것이 멈춘 채였다. 그러나 갑자기 아랍인들이 뒷걸음질을 쳐서, 바위 뒤로 사라져버렸다.’ - 83p

‘그는 기분이 한결 좋아보였고, 버스로 돌아갈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오두막집까지 함께 걸어왔지만, 그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첫 번째 계단 앞에 서있었다. 햇볕 때문에 머리가 윙윙거렸다. 잠시후 나는 다시 해변을 향해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 83p

‘샘이 흐르는 바위를 향해 걸었는데, 햇볕에 쪼여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더위 전체가 나를 짓누르며 내 걸음을 막아서는 것 같았다. 얼굴을 때리는 뜨거운 숨결을 느낄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붓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이겨내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 84p

‘나는 졸졸 흐르던 그 샘물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고, 태양과 수로고움과 여자들의 눈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늘과 휴식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때, 나는 레몽을 노렸던 그 자가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 84p

‘그는 나를 보자마자 조금 몸을 들어올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는 그에게서 제법 멀찍이, 한 10여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나는 간혹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움직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모두 끝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햇볕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나는 샘을 향해 몇걸음 내디뎠다. 햇볕이 내 뺨을 불태웠고,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햇볕은 엄마를 묻던 날의 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 86p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뜨거움이 나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나도 알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한 걸음 더 옮겨봤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 86p

‘이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마에서 울려대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정면의 단검에서 여전히 희미하게 번쩍이는 빛의 칼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노크 같은 것이었다.’ - 87p

두 번째 죽음은 뫼르소로 인해 일어난다. 그를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랍인? 복수? 레몽? 그를 괴롭힌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태양과 빛이 뿜어내는 열기였다. 어딜 가더라도 숨을 수 없고,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를 압박하는 것은 태양안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었다.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빛의 압도적인 열기 앞에서 긴장한 그는 몸부림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권총을 힘있게 쥐었다. 숨막히는 긴장감에 방아쇠가 당겨졌다. 한낮의 균형이, 해변의 예외적인 침묵이 그의 몸부림 속에 무너졌다.

2부

‘체포 즉시 나는 수차례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신원을 확인하는 심문이었으므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변호사를 갖는 게 반드시 필요한 건지에 대해 물었다. “왜요?” 그가 물었다. 나는 내 사건의 경우는 매우 단순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 91p

‘그는 침대 위에 앉더니 내 사생활에 관한 약간의 조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의 어머니가 최근에 양로원에서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예심단은 엄마의 장례식 날 내가 “무심해 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93p

‘”이것을 당신에게 물어야만 하는 나도 조금 곤혹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떤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검찰측의 강한 논거가 될 겁니다.”’ - 93p

‘확실히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거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많이든 적게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소원한다. 여기서 변호사는 내 말을 끊었는데, 매우 흥분한 듯했다.’ - 94p

‘나는 그를 붙잡고, 내가 그의 호감을 얻을 수 있기를, 잘 변호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게 되길 원한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 95p

‘”나는 당신처럼 무정한 영혼을 본 적이 없소. 내 앞에 온 범죄자들은 이 고난의 형상을 보면 언제나 눈물을 흘렸지.” 나는 그것이 바로 그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생각이었다.’” - 100p

뫼르소는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와 빛으로 인해 부풀었던 바다의 입김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뫼르소의 변호사와 예심 판사 모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감옥에서의 생활을 하는 뫼르소는 때로는 일렁이던 파도소리와 물속에서 몸을 담그던 해방감을 떠올리지만, 익숙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나는 마른 나무둥치 속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도 있었으니. 아무튼 이건 엄마의 지론중 하나였는데, 엄마는 종종 되뇌곤 했던 것이다. 누구나 결국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라고.’ - 108p

‘”그렇지만, 바로 그러기 위해 자네를 감옥에 넣는거지.” 하고 그가 말했다. “네? 바로 그 때문이라고요?” “물론이지, 그래 자유, 바로 그거야, 자네의 자유를 빼앗아 간거지”’ - 109p

‘그렇게 잠을 자고, 추억하고, 사회면 기사를 읽고, 빛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전에 나는 감옥 안에서는 결국 시간관념을 잃게 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별로 의미가 없던 말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얼마든지 길어질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는 그 점이. 아마도 살아내기에도 길지만, 너무나 늘어나서 종국에는 쌓이고 넘치게 되는 것이 하루였다. 단지 어제 또는 오늘이라는 단어 만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 113p

‘그때 나는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렇다. 달리 헤어날 길이 없다, 감옥안의 밤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 114p

어제, 오늘이라는 시간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뫼르소에게 감옥에서의 삶은 ‘시간’의 무의미함을 상기시킨다. 그에게 시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무한한 시간의 방에서 뫼르소는 헤어날 길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여러분께 이자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오랜 경력을 쌓으면서 사형선고를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명령의 자각과 괴물밖에는 읽히지 않는 이 남자의 얼굴 앞에서 제가 느끼는 공포로 인해, 결코 오늘만큼, 이 고통스러운 의무가 마땅하고, 형평에 맞고, 명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 떄문입니다.”’ - 141p

‘종래, 내가 기억하는 거라곤 내 변호사가 말을 계속하는 동안 아이스크림 장수가 부는 나팔 소리가 거리에서부터 온 방들과 법정을 거쳐 나에게까지 울려 퍼졌다는 것뿐이었다. 가장 사소하고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기쁨을 주었던 추억들이 나를 엄습했다. 여름의 냄새, 내가 사랑했던 동네, 어떤 저녁의 하늘, 마리의 웃음과 원피스들. 그러자 이곳에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부질없는 것들이 목구멍까지 치받쳤고, 내게는 단지 일을 끝내고 내 감방으로 돌아가 잠들 수 있길 바라는 조바심밖에 남지 않았다.’ - 144p

‘재판장이 이상한 투로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광장에서 내 머리가 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내가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었던 감정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것은 배려 같은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경찰들은 나를 아주 부드럽게 대했다.’ - 146p

‘나는 이런 무례한 확실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결국, 거기에는 그것을 세운 판결과 판결이 선고된 순간으로부터의 냉정한 진행 사이의 터무니없는 불균형이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프랑스(혹은 독일이나 중국) 국민의 이름 마냥 모호한 개념에 힘입어 언도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그 결정의 진지함을 훼손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고가 내려진 그 순간부터, 그 효과는 내 몸뚱이를 짓누르던 긴 벽처럼 확실하고 진지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149p

‘여기서 사건은 이미 정리되고, 배합은 확고하기 그지 없으며, 이미 합의된 바이기에 재론의 여지조차 없게 된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칼날이 빗나간다 하더라도 그저 다시 시작하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때 애석한 점이라면, 사형수는 단두대가 잘 작동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형수는 정신적으로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일이 차질없이 진행되는게 그 자신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 151p

‘”그러니까 결코 희망이 없는건가? 자네는 온통 죽는다는 생각만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가?” “네.” 내가 답했다.’ - 159p

‘다른 이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내게 뭐가 중요하며, 그의 하느님이나 우리가 택하는 삶, 우리가 정하는 운명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단 하나의 운명만이 나를, 나 자신을, 그리고 나와 함께 무수한 특권자를 택해야 했는데. 그러니까 그는 이해할까? 그 역시, 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 한들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 164p

‘그가 떠난 후,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 몸을 던졌다. 나는 잠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얼굴 위의 별과 함께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전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떠올라 왔다. 밤과 땅. 그리고 소금 냄새가 내 관자놀이를 식혀 주었다. 잠든 여름의 경이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내게로 흘러들었다. 그때, 한밤의 경계선에서 사이렌이 울부지젔다. 그 소리는, 이제 영원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다.’ - 166p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 166p

마지막 죽음은 뫼르소의 온전한 죽음이다. 태양의 무의미함과 빛의 열기가 그저 뜨겁기만 했던 그가, 차마 빛을 피해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어 긴장했던 그의 낮이 마침내 밤의 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때 엄마의 해방감을, 살아볼 준비를, 행복감을 느낀다. 밤이 있기에 낮이 힘이있고, 낮의 힘이 있기에 밤의 쓸쓸함이 위로가 된다. 그렇게, 뫼르소는 이 세계를 이해한다. 죽음을 안다. 그리고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방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알고 있는 자이다. 그는 모든 경계에서 자유롭다.

[이방인]의 미국판서문

그는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방인이며, 지극히 사적이고 고독하고 감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변두리의 주변인으로 겉돈다. - 20p

그렇지만 왜 그가 연극에 동참하지 않는지 자문한다면, 요컨대 그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만이 거짓말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아니 그것은 실재하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에 관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삶을 단순화하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행하는 일이다.

겉보기와는 반대로, 뫼르소는 삶을 단순화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실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예컨대 사람들은 관행에 따라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도록 그에게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진정한 뉘우침보다는 차라리 난처함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런 뉘앙스 때문이다. - 21p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뫼르소는 표류물이 아니라 어둠을 남기지 않는 태양을 사랑하는 인간, 가난하지만 가식 없이 솔직한 인간이다.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부재하기는커녕 집요하고도 깊은 열정, 절대와 진실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중요한 것은 아직은 소극적인 진실, 존재한다고 느낀다는 진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다는 진실이다. - 21p

어디선가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울리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리려 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 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