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토니 모리슨의 「Beloved」는 삶 속에 떠오를 수밖에 없는, 감히 기억할 수 없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픈 과거를 다루어가는 이야기이다. 노예 농장으로부터 도망쳐나와 노예사냥꾼에게 발각되자 자신의 두 살 난 딸의 목숨을 끊었던 세서, 그녀가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어하는 살아남은 딸 덴버, 칼과 방패를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하는 베이비 석스, 미래로 나아가길 원하는 폴 디, 18년의 시간이 흘러 세서의 집으로 찾아온 목숨을 잃었던 딸 빌러비드까지. 「Beloved」는 삶 속에 생겨난 커다란 상처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여러 모습으로 다루어나가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세서는 흑인으로서 동물 취급을 받았던,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빼앗겼던, 그리고 엄마로서 어린 딸의 목숨을 앗아야 했던 아픔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크나큰 아픔이 존재함에도 세서는 살아있었다. 그녀는 그저 일상 속에서 미치지 않고, 잘 살아있었다.

"어떻게 지냈어? 맨발인 건 알겠고."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젊고 자유분방한 웃음이었다.

- 19쪽

"타운의 식당에서 요리를 해. 남몰래 바느질도 더러 하고."

- 25쪽

엄마는 덴버가 평생토록 알아왔던 과묵하고 여왕처럼 당당한 여인이 아닌 소녀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소녀처럼 행동했다.

- 29쪽

세서는 어떻게 미치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Beloved」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노예제 속에서 경험한 죽음에 가까운 아픔들이 있다. 아들의 노동값으로 노예제에서 벗어난 베이비 석스, 수용소에서 고된 노역에 시달려했던 폴 디, 자신의 자식을 잃은 세서까지. 이들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으나, 이 아픔을 삶 속에서 다루어가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세서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자신을 아프게 하는 과거의 기억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도 모두 내려놓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춤을 추고, 웃고, 울며 자기 자신을 느끼고 스스로의 몸을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과거를 기억하기 보단 현재를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내려놓아라, 세서. 칼과 방패를. 내려놔. 내려놓아. 둘 다 내려놓아라. 강가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더는 싸울 궁리를 하지 마라. 그 더러운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 146쪽

"여기, 바로 여기에 우리 몸이 있습니다. 웃고 우는 몸, 맨발로 풀밭에서 춤을 추는 몸. 이 몸을 사랑하세요. 열심히 사랑하세요. 저기 저들은 여러분의 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 149쪽

반면 세서는 과거의 아픔들을 그저 ‘과거의 것’으로 두지 않는다. 세서는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저 현재 삶의 한 자리를 그 아픔들에게 내어준다. 그녀는 자신이 죽인 2살배기 아이의 귀신이 나타나는 집을 떠나지 않고, 노예로 일했던 곳에서의 기억도 굳이 잊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대체 이 집에 어떤 사악한 게 사는 거야?"
"사악하지는 않아, 그저 슬플 뿐이지. 어서 들어와. 그냥 걸어들어오면 돼."

- 22쪽

"스위트홈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그곳 얘기밖에 할 줄 모르죠? 그렇게 좋았으면 그냥 거기서 살지 그랬어요?" …… "하지만 우리가 살았던 곳이야." 세서가 말했다. "모두 함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각날 수밖에 없어."

- 31쪽

지음은 크나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Beloved」의 인물들을 보며, 각자의 삶에 존재하는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에 만들어졌으나,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상처에 대해. 과거의 아픔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베이비 석스와 같이 개인의 과거에 존재하는 아픔들을 잊고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반면 세서와 같이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가야 할 내일이 있어’라면서 과거를 묻어버리는 거지. 과거를 묻어버리면 현재가 아픈 것 같아. 과거의 나의 상처와 아픔을 인식함으로써 나의 현재가 명확해져.”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아픈 게 아닐 수도 있네. 과거의 상처를 숨기고 있어서 아플 수 있는 거지.”

- 지음에서 나누었던 대화 中

우린 살아가야 하는 내일이 있을 때 어제를 잊어버리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일을 생각하며 어제를 잊어버리고, 과거의 아픔을 과거에 남겨두고 흘러가려 한다. 그러나 세서는 모든 일들에 자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픔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자리.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만약 집이 불타 무너져버렸다 해도, 그 장소, 그 집의 광경은 남아 있거든.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 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광경을 내가 떠올리는 거야.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 67쪽

지음은 각자의 자리가 있는 아픔을 다루는 방법은 이를 잊기 위해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했다. 아픔은 과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만들어진 아픔은 자신의 자리에서, 늘 현재에 존재한다.

세서는 현재 속에서 아픔을 마주할 때 위로할 방법을 찾았다. 빌러비드가 자신이 죽였던 딸임을 깨달은 세서는, 그녀를 무서워하거나 내쫓지 않고 온전히 빌러비드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녀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위로를 전한다.

빌러비드, 내 딸. 내 거. 봐. 그 애는 스스로 내게 돌아왔고, 난 아무 설명도 할 필요가 없어. 예전엔 설명할 시간이 없었어. 재빨리 저질러야 했으니까. 재빨리. 그애는 안전해야만 했고 난 그애를 안전할 곳으로 보냈어. 하지만 내 사랑은 거칠었고, 그앤 이제 돌아왔지.

- 329쪽

날 용서해줄래? 내 곁에 있을래? 넌 이제 여기서 안전해.

- 354쪽

빌러비드는 세서가 가지고 있던 과거의 아픔을 상징한다. 세서는 자신의 아픔(빌러비드)을 온전히 마주하고 위로했을 때, 결국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딸 덴버를 데리러 온 백인을 발견했을 때, 세서는 자신의 딸을 또다시 죽이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세서는 두 눈이 활활 타는 느낌이 든다. 문득 위를 올려다본 건 아마 눈을 맑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하늘은 맑고 파랗다. 나뭇잎들의 선명한 초록에 죽음의 붓칠은 흔적조차 없다.

- 427쪽

하지만 다시 겪은 과거에서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어린 딸아이의 목을 긋는 대신, 노예사냥꾼이라고 착각한 집주인 보드윈을 향해 얼음송곳을 휘두른 것이다.

- 461쪽

세서가 미치지 않고,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머물지도, 미래를 살지도 않고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었다. 세서는 현재에서 현재의 아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 현실에 생생해지는 순간 온전히 그 아픔을 위해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음은 감히 기억할 수 없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세서의 모습을 통해 얻었다. 과거의 아픔을 과거에 남겨두지 않고, 아픔을 삶 속에서 몰아내려 하지 않으며, 온전히 아파하고 위로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 이 시간 지음은 현재의 아픔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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