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_ 토마 피케티

3부 불평등의 구조

‘일단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지속적으로 훨씬 더 높으면 부의 축적과 상속의 동학이 자동적으로 매우 심각한 부의 집중을 낳고, 이때 형제자매 간의 평등한 분배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개별 가족이 소유한 재산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인구적 충격들이 항상 존재한다.’ – 435p

‘요약하자면 오늘날 유럽에서의 부의 집중이 벨 에포크 시대보다 두드러지게 낮은 현실은 주로 우연적인 사건과 자본 및 자본소득에 부과된 세금 같은 특정한 제도의 결과다. 그러한 제도들이 결국 무너진다면 부의 불평등이 과거와 비슷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한가지 결론은 분명하다. 현대적 성장의 특징이나 시장경제 법칙과 같은 어떤 것이 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안정을 달성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 450p

우리는 지난 포럼을 통해 피케티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상회하면 성장이 상대적으로 둔화되고, 이는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는 21세기 자본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미국에서는 패자들에게 훨씬 더 매정하다. 최하위층의 미흡한 생산성은 물론이고 정의, 미덕, 능력을 근거로 우위를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심한 임금불평등을 정당화 하기 위해 종종 능력을 중시하는 가장 열렬한 신념을 동원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497p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표현의 이러한 커다란 변화에는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많은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상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속자본의 분배가 변화했을 뿐, 우리는 소수가 소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의 덜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로 옮겨왔다. 말하자면 소자본소득자들의 사회인 셈이다.’ – 501p

‘둘째, 성장률이 둔화되고, 국가간 조세경쟁이 치열해지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자본수익률이 높아지면 부가 더욱 집중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요한 정치적 격변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는 능력중심의 세계관, 혹은 적어도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과 희망은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503p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현실의 생활상태는 매우 불평등한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504p

‘오늘날에는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이 임대료, 이자, 배당금 이윤, 특허권료이거나 혹은 그 외의 다른 범주에 속하는 수익이거나 간에, 그러한 수익이 노동과 상관없는 자신의 소유에 대한 보상이라면 자본소득에 지나지 않는다.’ – 504p

민주주의는 모두의 출발선이 평등한 상태임을 보장하며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는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회구조나 체제로 인해 개인의 선택지가 제약되는 경우가 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상속 자본의 형태와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 정치형태의 위기를 초래하고 이데올로기간의 갈등을 부추깁니다.

‘어쨌든 능력과 부에 관한 쓸데없는 그리고 잘못된 논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다. 누구도 사회에서 기업가, 발명,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하다. 부의 불평등이 기업가적인 노력 때문이라는 주장은 부의 모든 불평등을, 그것이 얼마나 극단적인지와 상관없이 정당화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부에 따라 달라지는 자본수익률의 불평등과 결합되어 과도하고 지속적인 자본의 집중을 낳을 수 있다. 처음에 부의 불평등이 어떻게 정당화 되었건 재산은 모든 이성적인 한계를 넘어 그리고 사회적 유용성에 관한 모든 합리적 정당성을 넘어 스스로 성장하고 영속할 수 있다. ‘ – 528p

‘일본인 억만장자와 모리 다이키치로에 대해 말하자면, 이들은 1987~1994년에 포브스가 발표한 순위에서 빌 게이츠보다 앞섰는데, 서구에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흔히 서구의 민족중심주의를 발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부의 도덕적 위계를 구성하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는 부의 동학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이해하려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 530p

‘대체적으로 말해, 중요한 사실은 자본의 수익에는 흔히 진정한 기업가적 활동, 순수ㅎㄴ 행운, 노골적인 도둑질 등의 요소가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자본주의의 공포에 대해 묘사했다. 때때로 재산의 축적은 도둑질에서 시작되고, 자본의 임의적 수익은 최초의 범죄를 영속화 할 수 있다.’ – 532p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중동의 석유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초거대 자본의 소유자가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서방 국가는 산유국의 국부펀드가 자신들의 자산을 상당량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가끔 경제적 합리성과 금융 측면의 합리성이 결여된 듯 보일 정도의 규모로 자국에 박물관, 호텔, 대학, 심지어 스키 활주로를 건설하는 등, 집중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한 나라에 대한 다른 나라의 소유권에 관해서는, 넘지 말아야 할 심리적, 정치적 경계선이 정확히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 549p

‘산유국 국부펀드의 성장은 이로부터 이익을 얻는 국민의 필요와는 어울리지 않게 전적으로 과도한 횡재에 기대고 있다. 이것은 끝없는 축적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는 전세계 자본의 분배에서 영구적인 격차의 확대로 이어진다. ‘ -550p

<자본과 이데올로기> 인터뷰 中

피케티는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능력주의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오늘날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덜 성공한 사람에 비하여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런 능력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대체로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 후 대학 교육에 있어서는 소위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교육의 질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리고 실제로 누가 좋은 대학에 접근하는지를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이 부모의 소득과 자원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경제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부는, 기원상 사회적이고 집단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도 말한다. 피케티 교수는 "제 책이 전세계적으로 200만 부가 팔리는 경험을 하였지만 그 책을 쓰기 위해서는 공공교육제도, 수십 명의 동료, 전 세계 연구자 수백명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하고, 능력은 개인의 성공을 결정짓는 수많은 프로세스 중 그저 하나일 뿐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소득과 부(자산)에 대한 높은 누진과세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의 변화 방향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위기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여러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19는 공공의료서비스 강화나 기본소득, 최저소득 같은 복지체계 신설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고,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연대의 실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경계 강화와 국가중심주의, 이방인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키울 수 있어 일정한 사회적 퇴행도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저는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편인데, 코로나19가 가져온 절망감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노포비아적 광기에 미래를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트럼프 대통령은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을 지도자로 삼는 것에 사람들은 큰 불안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앙이나 위기가 어떤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그것은 결국 그 경험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에 따른 공동 행동들이 이후 이어질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이 이데올로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피케티 교수는, 역사적으로 불평등을 크게 시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들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이 만날 때 가능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움직임, 정당이나 노조 같은 조직된 집단의 구체적인 프로그램, 그리고 이들을 한데 묶는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나치게 커져가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가장 부족한 점은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환'이라고 지적한다.

"1990년대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사람들은 감히 이데올로기 문제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30년이 흘렀고,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달려온 세월이 또 다른 방향으로 인류를 몰아가며 모순을 쌓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주의 몰락이 가져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불평등 감소를 위한 이데올로기 전환을 시도해볼 때가 왔습니다."

질문 : 평등한 것에 대한 정의 해보기, 공정한 분배란 무엇일까?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우월과 열등의 이야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무수히 많은 자본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피케티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바래왔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