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나는 무엇인가. 나는 역사에서 무엇을 찾는가.”

<만엔원년의 풋볼>은 1960년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후, ‘안보 투쟁’이 일어나 또다시 혼돈 속에 놓여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정신을 '개인적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환원시킨 작품이라고 평한다.

아이덴티티는 성격이나 성향과는 다른 말이다. 성격이나 성향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래적인 특질을 말한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이미지이다. 우리는 자기 주위에 있는 누군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들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아이덴티티란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이미지는 본래의 자신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그것을 똑같다고 오인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자아는 구성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기 이미지 사이의 불일치로 찢기고 부서져 있다. 자아의 통일이란 이미지의 파편들을 기워붙여 하나로 화해시키려는 끝없는 노력이다. 이 과정은 어른이 되어도 계속된다. 자아라는 것이 자신의 상상에 기반한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강박되어 자신을 그 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반복되는 저항의 기록이다.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가진 지배세력이 존재했고, 그에 저항하는 것이 민중의 역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행동가'과 '관찰자'. 이 소설의 주인공 미쓰사부로는 '관찰자'이고 그의 동생 다사키는 '행동가'이다.

다카시는 100년 전 만엔 원년 때에 봉기를 주도한 증조부의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100년 후인 지금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기 위한 풋볼팀을 조직하고 훈련시킨다. 그는 과거에 골짜기 부근 조선인 부락을 침략했다가 조선인에게 살해된 S형의 죽음을 영웅적 최후로 해석하고 그 죽음을 불러온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형인 미쓰사부로는 이런 동생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철저히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미쓰사부로는 실제 문헌과 경험을 근거로 다카시의 환상을 냉소하는데, 이는 미쓰사부로가 살아온 삶 속에서의 개인적 체험들로 인해 그가 기력을 상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카시가 마을의 풍습을 재현하고 폭동을 주도하고 공통의 적을 짚어 모두의 증오를 쏟아부으며 마을의 화합을 이루어내는 동안 미쓰사부로는 고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로부터 선을 긋고 모든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미쓰사부로는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을 우상화하고 그의 탈을 깊게 눌러쓸수록 그를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 치부하고 바라볼 뿐이다.

다카시가 저항하는 ‘슈퍼마켓 천황’은 골짜기 마을의 슈퍼마켓 체인점의 주인인 조선인 백승기이다. 그가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들때문에 마을의 자생경제는 파괴된지 오래이다. 그의 별명인 ‘슈퍼마켓 천황’에는 자신들의 명운을 쥔 자가 과거 노예로 일본에 들어온 조선인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수치심이 더해져 있다. 다카시는 마을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잘 이용하여 그가 조직한 풋볼팀을 이용해 슈퍼마켓의 물품들을 약탈하는 등 소동을 벌이면서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봉기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다카시는 마을 조선인 처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처벌을 요구한다. 물론 그 사건의 범인은 다카시가 아니다. 미쓰사부로는 그러한 행동을 그가 어린 시절 하던 짓과 다름이 없다고 일축하며 그의 연기를 비웃는다. 하지만 다카시는 조선인 처녀의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그러한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미쓰사부로의 죽은 친구가 괴상한 죽음을 통해 무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듯, 다카시 역시 그의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있는 끔찍한 죄책감, 그의 ‘진실’을 떠안고 있었다. 다카시는 결국 미쓰사부로에게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지만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처절한 고백에도 뻔뻔하다고 그를 비난하며 그를 거부한다. 그 말을 들은 다카시는 결국 연습이라는 둥 아무데다 총을 쏘다가 벽에 ‘나는 진실을 말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자살한다. 나쓰미는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건내주지 못하는 그의 남편을 비난한다. 소동은 그렇게 모든게 망가진채 사그라드는가 싶지만 공사를 위해 뜯어낸 곳간채에서 증조부의 동생이 평생 숨어 살던 지하실이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반전된다. 그 순간,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와 증조부의 동생이 진정으로 닮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이 평생동안 이어지는 수치심에 고통스러워했으며 죽음을 통해서 내면에 갖고 있는 지옥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진실’이 미쓰사부로의 마음 속에 새로이 깃든다.


두 형제는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다르다. 특히 그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다카시는 만엔 원년의 봉기에서 증조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봉기의 주동자였던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쓰사부로는 증조부가 동생이 고치현으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고, 도쿄로 간 증조부의 동생은 개명하여 메이지 신정부의 고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형제의 기억은 둘째 형 S의 죽음에 관해서도 어긋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큰형은 태평양전쟁에 자발적으로 입대하고는 전사했고, 예과연습생에 지원한 S형은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지만, 패전 직후의 혼란 속에 발생한 조선인부락 습격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다카시는 S형을 습격을 주도하다가 죽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미쓰사부로는 조선인부락 습격에 동참한 무법자들이 조선인을 죽이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체구도 작고 가장 약한 S형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 믿고 있다.

상반된 시각 속에서 부각되는 것은 그들이 역사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는 과정이다. 역사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는 우연적인 사건이다. 미쓰사부로가 초등학생 무리가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는 것에는 어떠한 이유도, 필연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폭력의 우연한 피해자가 되었을 뿐이다. “어째서 그가 돌에 맞았는가?“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는 시도는 당연하게도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재는 무감각하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성의 요구, ’갈가리 찢겨져있다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것의 의미를 찾고 완벽한 정합성을 갖춘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내게 된다. 과거의 사건에는 어떠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의미란 바로 그 순간, 현재가 과거를 멋대로 분절하여 입맛대로 엮어내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현재가 과거 전체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순간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렇게 탄생한 의미는 그 방법이 분절인 탓에 실재가 가진 충만함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것을 억지로 통일시키고자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실재는 더욱더 분절되는 결과를 낳는다.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과 S형의 죽음에 집착하고 폭력적인 인간을 연기할 수록, 그의 실재는 더욱더 갈가리 찢겨나간다.

다카시의 죽음으로부터 미쓰사부로가 깨달은 것 또한 역사가, 기록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아니다. 그가 각성시킨 것은 ‘피고인’으로서의 자아이다. 그는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자신의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사태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해왔던 자신이 이제 '재심'을 받을 차례라 생각한다. '재심'의 판결은 네도코로 집안의 살아남은 혈족으로서 미쓰사부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무죄판결은 없다. 최후의 판결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는 계속해서 법정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수치심’이다. 당시의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패배의 굴욕감을 맛본 것에 모자라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채결로 사실상 자국의 통제를 미국에 넘긴 것과 다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예였던 조선인에게 경제권이 장악당한 것을 심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수치심을 다카시는 폭동을 통해서 분노로 전환시켜 슈퍼마켓에 쏟아부었지만, 결국 그것이 실패한 후에 수치심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 더 깊은 곳에 새로이 새겨져버렸다. 미쓰사부로의 수치심 자신의 외모에서 비롯된다. 다카시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인해서 자신의 지옥을 견디고 있었다. 다카시가 말한 ’누군가에게 말해버리면 자살하거나 미쳐버리거나 하게 될 절대적인 진실‘란 그러한 씻을 수 없는 치욕, 평생 떠안고 가야할 자신의 죄를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형성한 아이덴티티에 포함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있는 뒤틀리고 기이한 것이다. 만들어낸 자신의 환영과 이로부터 분절된 잉여가 뒤섞인 우리의 실재는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면 할수록 수도 없이 분절된다. 그리고 분절 과정 뒤에는 항상 아이덴티티가 포함시키지 못하는 영역, 거부하고 싶은 것들이 남기에 통일되지 못한 자아는 언제까지고 찢겨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이 이야기는 저마다의 인물들이 찢겨진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추악한 부분들 인정하고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아의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발악하는 이야기가 된다. 이들은 모두 술, 섹스, 스포츠, 과거 사건의 재연, 회상과 해석, 폭력 등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이미 일어났거나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것이 개인 - 사회(마을) - 국가(일본)으로 확대되면서 이들간에 거대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어떻게하면 자아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자신의 내면의 진실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알면서도 모른는척 살아가는 것. 가까이 가지 않으면 데일 일도 없다. 비밀을 파헤쳐서 가시에 찔릴 바에 그것을 영원히 묻어두고 그것에 다가가는 것에 대해서만 경계하면 된다.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권장받는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갈등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기워붙인 이미지들과 실재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어느 한쪽을 완전히 파괴하여 다른 한쪽만 남기면 된다. 물론 우리가 이성의 저주를 받고 있는 한 이미지를 파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실재쪽이다. 타카시가 ‘진실을 말한 것’이 된 이유는 그가 최후까지 저항했기 때문이다. 증조부의 동생 또한 평생동안 자신을 유폐시켜 의지를 관철시켰다. 추한 자신을 평생동안 벌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완성시킨다. 이야기의 말미에 ’끝까지 저항하였다.‘는 문장을 넣고 마침표를 찍음으로서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신화로서 완전한 상징으로 거듭난다.

물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 실로 위대한 방법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최후의 희생자가 됨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한다. 때문에 서양에서의 '죄' 개념은 '참회를 통해 정화'되거나 '주님으로부터 용서'받는다는 제3의 길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닿지 못한 동방의 섬나라에서 수치심이란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오욕의 개념에 머문다. 이를 제거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선 오직 ‘할복’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 소설은 수많은 상징적인 요소와 갈등으로 가득차있어 읽고난 뒤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형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마음 속에 잔잔히 파도친다. 그것은 이 소설이 다카시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마음 속에 갖고 있을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미쓰사부로가 우리가 마음 속에 갖고 있을 무기력함을 가장 처참한 형태로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쓰사부로의 친구의 기이한 자살도 그가 가진 혼란과 울분을 드러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시대도, 상황도 다르지만, 인물들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질문들은 세대를 넘어 멈추지 않고 반복된다.

다음 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며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를 읽고 이야기를 나눠볼 것이다.

참고자료

오에 겐자부로 노벨 강연
1994년 12월 7일

일본, 모호함, 그리고 나 자신

지난 비극적인 세계대전 당시 저는 어린 소년이었고 이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일본 열도의 시코쿠 섬에 있는 외딴 숲이 우거진 계곡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정말 매료된 책 두 권이 있었어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닐스의 멋진 모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가 공포의 물결에 휩싸였죠. 허클베리 핀을 읽으면서 실내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며 밤에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들 사이에서 잠을 자는 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닐스의 모험』의 주인공은 작은 생물로 변신해 새의 언어를 이해하고 모험을 떠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감각적인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첫째, 오래 전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코쿠 섬의 깊은 숲 속에서 살면서 이 세상과 이 삶의 방식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둘째, 스웨덴을 횡단하며 기러기 떼와 협력하고 싸우는 동안 여전히 순수하지만 자신감 넘치고 겸손한 소년으로 변해가는 장난꾸러기 소년 닐스의 모습에 동정심을 느끼고 제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닐스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닐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이 정화되고 고양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었던 것은 언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습니다(프랑스어 및 영어 번역):

"마마, 파파! 난 크고, 난 이제 남자예요!"

"어머니, 아버지!" 그는 울었습니다. "전 다 컸어요. 다시 인간이 되었어요!"

저는 특히 '나는 이제 사람이 되었다'라는 문구에 매료되었습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가족, 일본 사회와의 관계, 20세기 후반의 생활 방식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끊임없이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통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거의 한숨을 쉬며 '나는 새로운 인간이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자리와 이 기회에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글의 기본 스타일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출발해 사회, 국가,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길게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반세기 전, 숲 속 깊은 곳에서 살면서 닐스의 모험을 읽었고 그 안에서 두 가지 예언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언젠가 새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죠. 다른 하나는 언젠가 제가 사랑하는 기러기들과 함께 스칸디나비아로 날아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후 첫 아이가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의 히카리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어렸을 때 히카리는 야생 조류의 지저귐에만 반응했고 사람의 목소리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섯 살이던 어느 여름, 우리는 시골 별장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숲 너머 호수에서 한 쌍의 물레새(Rallus aquaticus)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고, 야생 조류 녹음에서 해설자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건 물총새예요." 아들이 처음으로 사람의 말을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저는 아들과 말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히카리는 현재 스웨덴에서 배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립된 장애인 직업 훈련 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음악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새는 그가 인간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게 된 계기와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히카리는 저를 대신해 언젠가 새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한 셈이죠. 또한 풍부한 여성적 힘과 지혜를 지닌 아내가 아니었다면 제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내는 닐스의 기러기 무리의 리더인 아카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스톡홀름으로 날아갔고, 두 번째 예언도 정말 기쁘게도 이제 실현되었습니다.

일본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이 연단에 섰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 아름다운, 그리고 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모호했습니다. 저는 영어 단어 '모호하다'를 일본어 '오마이나'에 해당하는 단어로 사용했습니다. 이 일본어 형용사에는 영어 번역에 대한 몇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와바타가 의도적으로 채택한 모호함은 강연 제목 자체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본의 나 자신'으로 음역할 수 있습니다. 전체 제목의 모호함은 '나 자신'과 '아름다운 일본'을 연결하는 일본어 입자 '아니'(문자 그대로 '의')에서 유래합니다.

제목의 모호함은 그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아름다운 일본의 일부인 나 자신'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니'라는 입자는 뒤의 명사와 앞의 명사가 소유, 소속, 애착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아름다운 일본과 나'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두 명사를 병렬로 연결하는 입자로, 실제로 미국의 저명한 일본 문학 전문가 중 한 명이 번역한 가와바타 강연의 영어 제목에 쓰여 있습니다. 그는 '일본, 아름다운 그리고 나'를 번역했습니다. 이 전문 번역에서 트란디토레(번역가)는 결코 트란디토레(배신자)가 아닙니다.

가와바타는 이 제목에서 일본 사상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동양 사상에서도 발견되는 독특한 종류의 신비주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선불교에 대한 경향을 의미합니다. 20세기 작가 가와바타는 중세 선승들이 쓴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 시의 대부분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언어적 불가능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에 따르면 단어는 닫힌 껍질 안에 갇혀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시에서 말이 나와서 우리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기꺼이 그 닫힌 말의 껍질 속으로 침투하지 않는 한 이러한 선시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습니다.

가와바타는 왜 스톡홀름의 청중 앞에서 극도로 난해한 시를 일본어로 읽기로 과감히 결정했을까요? 저는 그가 저명한 경력의 끝자락에 이르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솔직한 용기를 거의 그리움으로 되돌아봅니다. 가와바타는 수십 년 동안 예술적 순례자로 살면서 수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그 순례의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접근하기 어려운 일본 시에 매료되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고백을함으로써 '일본, 아름다운, 그리고 나 자신', 즉 그가 살았던 세계와 그가 창조 한 문학에 대해 이야기 할 수있었습니다.

또한 가와바타가 다음과 같이 강연을 마무리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내 작품은 공허의 작품으로 묘사되어 왔지만 서구의 허무주의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정신적 토대는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도겐은 계절에 대한 시의 제목을 '타고난 실재'라고 붙였는데, 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그는 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세이덴스티커 번역)

여기서도 용감하고 솔직한 자기 주장이 감지됩니다. 가와바타는 자신이 동양의 고전 문학에 널리 퍼져 있는 선 철학과 미적 감성의 전통에 본질적으로 속해 있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작품의 속성인 공허함을 서구의 허무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알프레드 노벨이 희망과 믿음을 맡긴 다음 세대의 인류에게 진심을 다해 연설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26년 전 이 자리에 섰던 동포 가와바타보다는 70년 전 저와 비슷한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더 큰 정신적 동질감을 느낍니다. 물론 저는 시적 천재인 예이츠와 저를 동급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예이츠와는 거리가 먼 나라에 사는 겸손한 추종자일 뿐입니다. 예이츠의 작품을 재평가하여 금세기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윌리엄 블레이크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질러 번개처럼 중국과 일본으로'라는 시를 썼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제 문학 활동의 정점이 되고자 하는 3부작을 집필하는 데 몰두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1부와 2부가 출간되었고 최근에 3부이자 마지막 부분의 집필을 마쳤습니다. 일본어로 제목은 불타는 푸른 나무입니다. 이 제목은 예이츠의 시 '흔들림'의 한 연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 꼭대기 나뭇가지에 있는 나무는
반은 반짝이는 불꽃이고 반은 녹색입니다.
이슬에 적신 풍부한 단풍 ...
('진동', 11-13)

사실 제 3부작은 예이츠의 시 전체에 넘치는 영향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예이츠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아일랜드 상원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긴 축하 동의안을 제안했습니다:

... 그의 성공을 통해 아일랜드가 세계 문화에 기여한 저명한 공헌자로서 국가가 얻은 인정."
... 지금까지 국가들의 동질성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인종.
... 우리 문명은 예이츠 상원의원의 이름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 파괴에 대한 열정으로 광기에서 충분히 제거 된 사람들이 몰려들 위험이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노벨상: 예이츠 상원의원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예이츠는 제가 따르고 싶은 작가입니다. 저는 이제 '국가들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진' 다른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기 공학과 자동차 제조 기술 덕분에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또한 자국과 주변국 모두에서 '파괴의 열광에 빠진 광기'로 찍힌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렇게하고 싶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내 마음속에 각인된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가와바타와 함께 '일본, 아름다운 그리고 나'라는 문구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조금 전에 가와바타 강연의 제목과 내용의 '모호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강연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영국의 저명한 시인 캐슬린 레인이 윌리엄 블레이크에 대해 모호한 것이 아니라 모호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 따라 '모호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저는 '일본, 모호한, 그리고 나'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개항 이후 근대화를 이룬 지 120년이 지난 오늘날의 일본은 모호함의 두 극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 양극화가 깊은 상처처럼 각인된 채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양분할 정도로 강력하고 관통하는 이 모호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로부터 배우고 모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 문화를 굳건히 유지해 왔습니다. 일본의 모호한 방향성은 일본을 아시아의 침략자라는 위치로 몰아넣었습니다. 반면에 근대 일본의 문화는 서양에 철저하게 개방적이거나 적어도 서양의 이해를 방해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근대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성실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문단에 등장한 작가들은 패전 직후, 재앙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재탄생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전후 작가'들입니다. 그들은 일본군이 아시아 각국에서 저지른 비인간적인 잔혹 행위를 보상하고 서구 선진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간극을 메우기 위해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야만 겸손한 자세로 전 세계와 화해를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작가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학적 전통의 맥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은 것이 저의 열망이었습니다.

근대 이후의 일본과 일본인의 모습은 양면성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근대화의 역사 한가운데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이 전쟁은 근대화의 일탈이 가져온 전쟁이었습니다. 50년 전 이 전쟁의 패배는 일본과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이 '전후파'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엄청난 비참과 고통에서 재탄생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재탄생을 열망하는 일본인들의 도덕적 소품은 민주주의 사상과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도덕적 소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일본 국민과 국가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과거 역사로 얼룩져 있었다. 이러한 도덕적 소품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최초로 사용된 핵무기로 인해 사망한 희생자들과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생존자 및 그 후손(한국어가 모국어인 수만 명 포함)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이 유엔군에 더 많은 군사력을 제공함으로써 세계 각지의 평화 유지와 회복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우리는 새 헌법의 핵심 조항에 전쟁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재건을 위한 도덕의 기초로 영원한 평화의 원칙을 선택했습니다.

이 원칙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관용의 오랜 전통을 가진 서구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본에서도 헌법에서 전쟁 포기에 관한 조항을 삭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으며, 이를 위해 그들은 해외로부터의 압력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에서 영원한 평화의 원칙을 삭제하는 것은 아시아 국민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희생자들에 대한 배신 행위일 뿐입니다. 작가로서 그 배신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원칙을 초월한 절대 권력을 전제로 한 전후 일본 헌법은 국민들의 지지를 어느 정도 받아왔습니다. 지금은 반세기가 지난 신헌법이 있지만, 일부에서는 구 헌법을 지지하는 국민 정서가 현실에 남아 있습니다. 일본이 지난 50년 동안 고수해 온 원칙이 아닌 다른 원칙을 제도화한다면 전후 폐허 속에서 근대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 즉 보편적 인류애라는 개념을 확립하고자 했던 우리의 결심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평범한 개인으로서 제 눈앞에 떠오르는 공포입니다.

제가 강연에서 일본의 '모호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에 걸쳐 만연해 있는 일종의 고질병입니다. 일본의 경제적 번영도 세계 경제 구조와 환경 보존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종류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모호성'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의 우리보다는 전 세계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전후 경제적 빈곤이 절정에 달했을 때 우리는 회복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이를 견뎌낼 수 있는 회복력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현재의 번영에서 비롯된 불길한 결과에 대한 불안을 견딜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제 일본의 번영이 아시아 전체의 생산과 소비의 잠재력 확대에 통합되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쿄의 방대한 소비 문화와 전 세계의 하위 문화를 단순히 반영하는 소설에서 벗어나 진지한 문학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일본인으로서 어떤 정체성을 추구해야 할까요? W.H. 오든은 소설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 먼지 속에서
더러운 더러운 가운데서도 정의로워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약한 사람 속에서,
인간의 모든 잘못을 지독하게 겪어야 한다.
('소설가', 11-14쪽)

이것이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제게 '삶의 습관'(플래너리 오코너의 표현을 빌리자면)이 된 것입니다.

바람직한 일본인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위해 조지 오웰이 '인간적인', '제정신', '유쾌한' 등의 단어와 함께 자주 사용했던 형용사 중 '품위 있는'이라는 단어를 그가 선호하는 캐릭터 유형으로 뽑고 싶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이 수식어는 '일본, 모호한 것들, 그리고 나'에서 저를 식별하는 데 사용된 '모호한'이라는 단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일본인의 모습과 일본인이 원하는 일본인의 모습 사이에는 크고 아이러니한 불일치가 존재합니다.

두 단어 모두 관용과 인간애와 같은 공통된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괜찮은'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휴머니스트' 또는 '휴머니스트'의 동의어로 사용해도 오웰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 중에는 '품위 있는' 또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과 사상의 학자인 고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2차 세계대전 직전과 한창 애국심의 광풍에 휩싸였던 와타나베 교수는 다행히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일본의 전통적 미의식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에 인본주의적 인간관을 접목하려는 외로운 꿈을 가졌습니다. 와타나베 교수는 가와바타가 '일본, 아름다운 것, 그리고 나'에서 생각한 것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서둘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일본이 서구를 모델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방식은 대격변이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그 과정과는 다르지만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방식으로 서구와 자국 사이의 간극을 가장 깊은 수준에서 메우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든 작업이자 고난이었을 테지만 기쁨이 넘쳤던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와타나베 교수의 프랑수아 라블레 연구는 일본 지성계에서 가장 탁월하고 보람 있는 학문적 업적 중 하나였습니다.

와타나베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그가 지도교수에게 라블레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포부를 말하자, 저명한 원로 프랑스 학자는 야심 찬 젊은 일본 학생에게 "이노우에 드 라 트랑스 드 라 인트라두스블 라블레"(번역할 수 없는 라블레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전례 없는 사업)라는 문구로 대답했습니다. 또 다른 프랑스 학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벨 앙트레제 판타그뤼엘리크"(감탄할 만한 판타그뤼엘 같은 기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는 전쟁과 미군 점령 기간 동안 빈곤에 시달리는 환경에서 위대한 기업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수아 라블레의 선구자이자 동시대인이자 추종자였던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의 삶과 사상을 당시 혼란스럽고 방향을 잃은 일본에 이식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삶과 글쓰기 모두에서 저는 와타나베 교수의 제자였습니다. 저는 두 가지 중요한 면에서 와타나베 교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소설을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미하일 바흐친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이미지 체계 또는 대중적 웃음 문화'라고 공식화한 것, 물질과 물리적 원리의 중요성, 우주적, 사회적, 물리적 요소 간의 대응, 죽음과 재생에 대한 열정의 중첩, 위계적 관계를 전복하는 웃음 등을 라블레의 번역을 통해 구체적으로 배웠습니다.

이미지 시스템은 저처럼 주변부, 변방, 비중심 국가인 일본의 주변부, 변방, 비중심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보편에 도달할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 저는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서의 아시아가 아닌, 끊임없는 빈곤과 다산의 혼돈으로 얼룩진 아시아를 대표합니다. 저는 오래되고 친숙하지만 살아있는 은유를 공유함으로써 한국의 김지하, 중국의 촌이, 무젠과 같은 작가들과 뜻을 같이합니다. 저에게 세계 문학의 형제애는 구체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관계로 구성됩니다. 저는 재능 있는 한국 시인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단식 투쟁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자유를 박탈당한 재능 있는 중국 소설가들의 운명에 대해 깊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와타나베 교수가 저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방식은 휴머니즘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휴머니즘을 살아있는 총체로서의 유럽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신에 대한 정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개념입니다. 와타나베는 역사적 자료에 대한 정확한 독해를 바탕으로 라블레를 중심으로 에라스무스부터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옹까지, 마거리트 왕비부터 가브리엘 데스트레까지 앙리 4세와 관련된 인물과 여성에 대한 비판적 전기를 썼습니다. 이를 통해 와타나베는 일본인들에게 휴머니즘, 관용의 중요성, 선입견이나 자신이 만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취약성에 대해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의 진심은 덴마크 언어학자 크리스토퍼 니롭의 발언을 인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 항의하지 않는 사람은 전쟁의 공범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이 되는 휴머니즘을 일본에 이식하려는 와타나베는 '이노우에 기업'과 '판타그뤼엘리크 기업'에 모두 용감하게 도전했습니다.

와타나베의 휴머니즘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서 저는 소설가로서 제 임무가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과 독자들이 자신의 고통과 시대의 고통에서 회복하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인의 특징인 모호함의 양 극단에 서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문학을 통해 그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동료 일본인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다시 한 번 제 아들 히카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제 아들 히카리는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에 새소리를 듣고 각성하여 결국 자신의 작품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작곡한 작은 곡들은 신선한 화려함과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치 풀잎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보였죠. 순수라는 단어는 '아니다'라는 뜻의 in과 '상처를 입히다'라는 뜻의 nocer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히카리의 음악은 이런 의미에서 작곡가 자신의 순수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입니다.

히카리가 더 많은 작품을 작곡할수록 그의 음악에서 '울부짖는 어두운 영혼의 목소리'도 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신적 장애를 가졌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은 작곡 기법의 성장과 개념의 심화를 통해 작곡 행위, 즉 '삶의 습관'을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어두운 슬픔의 덩어리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울부짖는 어두운 영혼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그의 행위는 어두운 슬픔을 치유하는 회복의 행위입니다. 나아가 그의 음악은 동시대 청취자들에게도 치유와 회복을 주는 음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예술이 가진 절묘한 치유의 힘을 믿는 근거를 발견합니다.

저의 이러한 믿음은 아직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나약한 사람'인 나는 이 검증할 수 없는 믿음에 힘입어 20세기 내내 괴물 같은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누적된 '모든 잘못'을 '지독하게 앓고 싶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주변적이고 변두리이며 중심을 벗어난 존재로서 저는 겸손하고 인본주의적인 기여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인류의 치유와 화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색하고 싶습니다.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94

출처: https://www.nobelprize.org/prizes/literature/1994/oe/lecture/

번역: deepL.com